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도 그때면 로봇을 사랑하리

권영상 2014. 12. 8. 13:22

나도 그때면 로봇을 사랑하리

권영상

 

 

 

 

 

외롭게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제력이 없어 좁은 방에서 혼자 밥을 하고, 혼자 세탁을 하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다가 밤이 되면 혼자 자는 이들. 말벗 없이 혼자 사는 이들에게도 본디 자식은 있었을 테다. 그 자식들도 처음엔 부모를 돌보았겠지만 그들도 사는 일에 시달리느라 부모와 멀어졌고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영영 외면하며 살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노인들 중엔 경제적으로 궁핍한 분들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면서도 자식과 왕래 없이 외로이 사는 이들도 있다. 살아가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지만 단 하나, 혈연인 자식들과의 소통 없는 외로움에 지친 분들. 그들은 외롭게 살다 외롭게 세상을 뜬다. 그러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고독하다.

 

 

 

여기 세심한 말과 따스한 감정으로 인간과 교류하는 로봇이 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만든 SF 영화 “바이센텐니얼 맨 Bicentennial Man (200년을 사는 사람)”에 등장하는 앤드류가 그다.

어느 날 리처드(샘닐 역)는 가족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가사로봇 앤드류(로빈 윌리엄스 역)를 구매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시장도 보고, 집에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정원 손질도 한다. 심지어는 리처드를 주인이라 섬기며 잔심부름도 하고 말벗도 되어준다. 그런 그의 인공지능 칩에 우연히 떨어진 마요네즈 한 방울로 앤드류는 놀라울 정도의 지능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리처드는 그를 아들처럼 아끼게 된다.

 

 

 

어느 날, 앤드류는 리처드의 막내딸이 소중히 여기는 유리로 된 말 인형을 깨뜨린다. 그것 때문에 슬퍼하는 막내딸을 보자, 앤드류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만드는 설계를 배우고, 마침내 나무로 너무도 정교한 말을 만든다. 감정의 놀라운 소통을 지켜본 리처드는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깊이 있는 독서법을 가르친다.

‘아가씨를 사랑하고 싶다.’

리처드의 막내딸이 결혼을 할 때 앤드류는 그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마음 써주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로봇인 앤드류는 독서에 몰두한다. 독서를 통해 인간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자유를 획득하였는지 자유를 얻어낸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한다. 심지어 자유를 살 수만 있다면 사겠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목록을 주인에게 내놓기도 한다.

 

 

 

로봇으로 살아야한다면 그는 무려 200년을 살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번호 NDR-114의 로봇이다. 그러나 그가 인간으로 살게 된다면 목숨의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자유를 얻고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산다.

인간이 된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앤드류는 비록 일찍 죽는다 하더라도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는 일을 더 사랑했고,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봉사하는 기쁨’을 더 사랑했다. 앤드류의 나이 199살이 되던 어느 날이다. 앤드류는 리처드의 손녀딸의 임종을 앞두고 자신도 그녀 곁에서 죽음을 맞으면서 다시 한 인간으로 태어난다.

 

 

 

영화가 다 끝나도록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이기적인 욕심이지만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노년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질문이었다.

머지않아 인류는 인간 이상의 따스한 감정과 아름다운 사상과 영혼의 교류가 가능한 로봇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인간이 아닌 로봇을 통해 고독한 영혼을 위로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외면당할 때에도 내 곁을 지켜주는 앤드류가 있다면 나도 그를 사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