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가 뽑은 올해를 빛낸 선수

권영상 2014. 12. 20. 12:58

내가 뽑은 올해를 빛낸 선수

권영상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권위를 자랑하는 ‘올림피아 시상식’이 올해의 축구 선수로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디 마리아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프로골프투어와 유럽프로골프투어는 올해의 선수로 북아일랜드 출신 로리 맥길로이를 선정했다. 한국갤럽도 전화 조사한, 올해를 빛낸 한국 선수들을 발표했다. 그 1위가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올해를 빛낸 선수’들이 발표된다. 그들이 나와 아무 관계도 없지만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70억 인구 중에서 단 한 명으로 선정된다는 일은 놀랍다. 우리나라 안에서건 서너 명 가족 중에서건 단 한 명으로 뽑히는 일은 분명 행운이다. 그런 행운 뒤엔 숨은 노력과 눈에 보이는 명쾌한 결과가 있었다. 그들의 땀 흘린 노력과 결과는 언제나 아름답다. 어쩌면 그들이 인간의 역사를 조금씩 진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올해를 빛낸 선수로 뽑고 싶은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내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다. 바로 ‘나’다. 그는 오래전부터 내가 가장 아껴왔고 신뢰를 보내온 인물로 올해의 선수로 선정하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그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가장 나답게 나를 구현해 낸 인물이다. 누구도 그만큼 나를 잘 표현한 인물은 없다. 그 어떤 훌륭한 연기자도 그만큼 나를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나를 빛낸 최고의 선수다. 그가 활약한 무대는 수많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아이스링크도 아니며 열기 가득한 축구 리그 경기장도 아니다. 부모가 물려준 거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하는 풍요로운 무대도 아니며 그렇다고 엄청난 행운이 가끔씩 찾아오는 그런 무대도 아니다. 별로 관심 가져주는 사람 없는, 소박한, 아니 너무도 소박한, 다람쥐가 돌리는 쳇바퀴 같은 그런 단조로운 무대가 그의 무대다.

 

 

 

 

내가 뽑고 싶은 올해의 인물인 그는 바로 그런 무대를 배경으로 한 인물인 ‘나’다. 그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만약 그가 없었다면 로리 맥길로이가 무슨 소용이며, 그가 없었다면 70억 지구가 내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러고 보면 비록 그는 이름 없는 인물이긴 해도 70억 인구와 맞먹는 위대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는 항상 내가 걸어가는 길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일을 저지르는 것도 그였고, 힘들기는 해도 그 일을 감당해 낸 것도 그였다. 실수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숱하게 쏟아지는 비난 앞에 서 있어주었고, 그 모든 비난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내가 분노하려할 때나 내가 시작한 일을 포기하려 할 때에도 나를 가로막은 것은 그였다. 그 덕분에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흔들리거나 외로울 때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내게로 달려온 것도 그였다. 그는 충실한 동반자답게 내 곁을 지켜주었다. 가족이 내 가까이 다가와 그 어떤 좋은 말로 나를 위로해준다고 하나 내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 한다. 깊은 밤 외로움에 깨어났을 때, 그때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그는 내 심장까지 찾아들어와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 말 못 하는 상처들까지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고, 그 상처가 소리치는 아픔까지 하나하나 들어주었고, 또 대답해 주었다.

 

 

 

 

내가 어떤 일의 판단을 내리지 못해 망설일 때에도 그는 나와 함께 그 판단이 설 때까지의 고민을 함께 해 주었다. 때로 우유부단하다는 나에 대한 평가도 그는 자신의 일처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내 인생의 무대가 좁다거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다거나 독단과 독선에 빠질 때가 많다는 말을 들을 때도 그는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했다.

 

 

 

수십 년간 피워온 담배를 끊은 일이나 즐겨마시던 술의 횟수를 줄인 것도 그의 충고와 조언 덕분이다. 그는 내게 자제와 절제의 미덕을 권한다. 세상의 유혹에 휘둘리려할 때 나를 잡아준 것도 그였으며, 내가 옳다고 믿어온 가치 앞에서 흔들릴 때 나를 다잡아준 것 역시 그였다. 그는 나를 위해서라면 피투성이가 되어도 좋을 만큼 나를 아꼈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나침반처럼 올곧게 지켜주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렇듯 나도 그를 사랑한다.

그가 내게 무엇을 더 희망하고, 무엇을 더 절제하기를 원하는지 나는 안다. 인생을 이만큼 살아왔어도 나는 아직 그의 조언이 더 필요할 정도로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단 하나 그의 아집만은 결단코 사양하겠다.

내년에도 내가 선정하는 올해를 빛낸 선수로 그가 뽑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는 나이며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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