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한 자루
권영상
23일이 상강이니 상강이 지난 뒤 고구마를 캐리라 했다. 상강에 서리가 내리니까 서리 내리면 고구마 순은 서리에 견뎌내지 못한다. 23일이 내일이니 뭐 꼭 그 절기대로 서리가 내릴까 그런 생각으로 느긋이 내려왔다.
근데 내려와 보니 고구마 밭이 된통 서리를 맞았다. 거무죽죽하다. 나 없는 열흘, 그 사이에 벌써 서리가 내렸다. 거기다 이삼 일 내린 비에 밭마저 눅눅했다. 서리 내린 뒤에도 안 캐면 고구마가 싹을 밀어 올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할 수없이 서울서 가져온 반찬이며 세탁물을 정리하고는 낫을 들었다. 예전 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낫으로 고구마 순을 걷어냈다. 고구마 이랑이라 해봐야 네 이랑. 생땅을 일구어 심었으니 고구마가 달리기나 했을까, 그런 우려가 있었다. 거기다가 모종 심는 때를 놓쳤다. 놓쳤다기 보다 심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골을 캐고는 감자 거름 주듯 풀거름을 하고 그 위에 고구마 모종을 했다. 그때가 5월 6일.
그후 보름이 지나도록 고구마 모종이 살아나지 않았다. 고구마는 웬만한 땅이면 다 산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꽂아놓으면 사는 게 고구마다. 근데 다 죽었다. 연이은 가뭄과 고구마 두둑 안에 풀거름을 한 탓에 두둑이 건조해 모두 말라버렸다.
모종을 다시 사려고 보니 시장엔 이미 고구마 모종이 끊겼다.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다. 나는 모종을 얻기 위해 부랴부랴 고구마 다섯 개를 사다가 통째 심었다. 고구마에 대한 집념이 있었다. 겨울날 눈이라도 내리면 고구마 몇 개라도 굽는 겨울 분위기 때문이었다. 고구마를 구워놓고, 내가 기른 배추김치를 먹으며 겨울밤을 보내 보자는 야무진 심사가 나를 자꾸 채근했다.
결국 고구마 다섯 개에서 서른 포기 모종을 얻어내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때가 7월 18일. 그러니까 심을 적기를 무려 두 달이나 실기한 셈이다. 봄날에 게으른 농부는 가을에 거두어들일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괜히 다급해졌다. 기왕 시골에 내려왔으니 부대끼며 살아온 서울과 달리 좀 여유를 내며 살자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또 본디의 나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고구마가 없는 겨울은 아예 안중에 없는 것처럼 나는 고구마에 집중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드디어 고구마 모종을 냈다. 늦게 본 자식이 더 아깝듯 늦게 낸 고구마 모종에 나는 온갖 정성을 다했다. 김도 한 번 더 매어주고, 물도 한 번씩 더 주었다.
올해는 가뭄이 심했다. 다른 집들 고구마 순이 한창 어우러질 때 우리 고구마는 그제야 줄기를 벋기 시작했고, 다른 집들 고구마 두둑이 터져날 때 우리 밭은 아무 기미도 없이 조용했다.
나는 더이상 고구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올해의 일을 거울삼아 내년엔 풀거름을 삼가야겠다는 반성만 했다.
그런데 고구마 두둑을 헤치자, 내 우려와 달리 고구마는 풍작이었다. 심은 지 3개월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는 말이 옳았다. 꼭 석 달 만이었다. 잘라낸 줄기 밑에 호미를 넣으면 큼직한 고구마가 두어 개씩 많은 곳은 서너 개씩 나왔다. 땅속에서 사과같이 빨간 고구마가 솟구쳐 나올 때의 기쁨은 통신사로 가는 길에 대마도에 들러 처음으로 고구마를 본 조엄에 비할까. 그때 조엄은 대마도인들이 캐내는 고구마를 보고 “땅속에서 붉은 과일이 줄지어 나오다니!” 그러며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고구마를 다 캐어놓고 보니 고구마가 굵다. 큰 놈은 어린아이 머리통만했다. 그만한 고구마가 십여 개가 넘었다. 단 석 달 만에 이토록 커주는 고구마의 위력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이 놀랄만한 수확은 고구마를 심어놓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보내는 고구마의 성실한 답변이며 신뢰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나는 고구마의 결실을 의심했다. 그러나 고구마는 나의 의심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제부터 나는 신뢰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성장 기간에 대한 신뢰, 그러니까 그것에 공을 들이든 안 들이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도 분명히 그다워진다는 신뢰감을.
볕에 말린 고구마 흙을 다시 털어내어 자루에 가득히 담았다. 자루를 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세상을 번쩍 들어 올린 만큼 기쁘다. 올겨울은 눈이 자주 내리고, 또 볼태기를 얼릴 만큼 좀 춥다고 해도 괜찮겠다. 무엇보다 세상에 신뢰를 보내는 겨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이 기쁨이 안성에 내려와 맛보는 두 번째 기쁨이다. 첫번째는 감자 한 상자에서 얻은 기쁨이고, 두번째는 고구마 한 자루에서 얻은 기쁨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쁨은, 기쁨을 기쁨으로 알아가는 내 삶이다. 살아오며 고구마 한 자루보다 더 큰 기쁨도 수없이 만났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기쁨인 줄 모르고 살았다. 사는 중에 누구나 다 얻는 당연한 결과물로만 생각했지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인 줄 몰랐다.
고구마 캔 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딸아이에게 보냈다.
조금 후, 답장 문자가 왔다.
“행복이 한 자루네!”
그래서 나는 지금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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