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상처난 모과가 향기롭다

권영상 2014. 10. 20. 12:36

상처난 모과가 향기롭다

권영상

 

 

 

 

천둥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컴컴한 새벽이다. 빗소리가 베갯맡으로 물밀듯 밀려온다. 밤부터 내린다던 비 예보가 떠오른다. 여태 파란 가을하늘만 보아와서 그런지 천둥과 빗소리가 생경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는 거실 문을 열었다. 건너편 느티나무가 요동치듯 비바람에 흔들린다. 새벽바람이 가을비와 함께 아파트를 지나가는 모양이다. 먹구름 덮인 하늘이 컴컴하다. 이 비 그치면 기온도 떨어지고 마당에 서 있는 나무들마저 잎을 떨어뜨리겠다.

 

 

 

내다볼수록 창밖의 가을 새벽 풍경이 스산하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런 풍경을 내다본다. 잠자리에서 편안히 자고 일어난 나와 달리 가을의 끝자락을 지나가는 계절은 몸도 마음도 편치 못하다. 겪어내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다. 이쪽 모과나무 밑에 노란 빛 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간밤 바람에 노란 별 하나가 오똑 떨어져 내린 것처럼 환하다.

 

 

 

‘모과 아닐까?’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모과일 것 같았다. 새벽을 흔드는 바람이 불고 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밤이면 고향집 모과나무 밑에도 모과가 떨어졌다. 아버지가 외가에서 얻어온 모과나무였다. 이런 날이면 감나무 숲 아래에도 감이 많이 떨어졌다. 붉고 잘 익는 홍시거나, 바람에 가지가 꺾인 감이었다. 그걸 주우러 가을비 내린 새벽이면 누나와 감나무 밑을 돌아다녔다. 검스레한 풀숲에 여기저기 떨어져내린 감은 이미 익을 대로 익어 주워들면 손안이 찰만큼 컸다. 그걸 한 개씩 찾아내어 집어들 때에 느끼는 무게감. 그것은 충실하게 익은 가을의 무게이며 완전한 생명의 무게이다. 그때의 그 기분은 우리 같은 시골애들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주섬주섬 추리닝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갔다. 집에서 내다보던 것과는 다른 찬비가 오고 있다. 우산을 폈다. 빗속을 걸어 아파트 안마당으로 갔다. 사람이라곤 없는 새벽.

나는 오두마니 떨어져 있는 노란 빛덩어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빛은 모과였다. 비에 젖은 모과를 집어 들었다. 모과는 저만의 무게로 내 손안에 덥석 안겼다. 나도 모르게 코에 댔다. 새벽 모과향이 내 몸 안으로 깊이 스며들어온다.

‘향기롭기도 하지.’

모과를 받쳐 들고 또 한 번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일어나 모과나무를 쳐다봤다. 2,3미터 높이. 거기에 매달려 두어 계절을 살던 모과가 이쪽 세상으로 떨어져 나온 거다.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가 떨어져 나오느라 배꼽이 깨어졌듯 모과도 이쪽 세상으로 떨어져 오느라 그만 금이 갔다. 향기는 그 깨어진 두 개의 금 사이에서 솟아나왔다.

 

문 여닫는 소리에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나는 아내 앞에 불쑥 노란 모과덩이를 내밀었다. 향기를 맡아보던 아내가 모과를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상처 난 모과라 향기가 더 진하네.”

그러며 검게 멍든 부위를 가리켰다. 꼭지 아래에 종지만 하게 굳어버린 곳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꼭지도 말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모과는 제 몸이 더 상하기 전에 다른 모과들보다 일찍 샛노랗게 익었다. 샛노란 색깔은 어쩌면 제 몸을 살려내는 빛일지도 모른다. 코에 댈수록 향기롭다. 상처 난 과일이 향기롭다는 말 그대로 모과향이 진하다.

 

 

 

나는 검게 굳어버린 자국을 만져본다.

“제 몸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향기를 만들어내는지도 몰라.”

아내가 그 말을 던지고는 다시 안방에 들어갔다. 아직 한숨 더 자도 잘 시간이다.

나는 창문을 열고 모과나무를 내려다 봤다. 이처럼 노란 모과가 없다. 푸른 기가 도는 누런 빛이다.

나도 다시 잠자리에 따라 들었다.

천둥은 어쩌면 이 상처난 모과와의 만남을 위해 나를 깨웠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