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방에 들어온 벼메뚜기

권영상 2014. 10. 27. 11:46

방에 들어온 벼메뚜기

권영상

 

 

 

 

가을 상추로 점심을 먹고 서울서 가져온 묵은 신문을 들추고 있을 때다. 거실바닥에서 뭔가 탁, 하는 소리가 났다. 펼쳐든 신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메뚜기다. 벼메뚜기. 놀라운 일이다. 어쩌자고 벼메뚜기가 거실 안에 들어왔다. 빤히 보고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또 깡충 뛴다. 그러더니 탁, 소리를 내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밑에 떨어져 내린다.

 

 

 

나는 식탁 위에 가만히 신문을 내려놓고 엉금엉금 거실바닥을 기어 메뚜기 쪽으로 다가갔다. 메뚜기를 향해 잽싸게 손을 날렸다. 잡혔다. 손을 오므렸다. 손안이 간지럽다. 옴켜쥐고 일어서려는데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휙 달아난다. 식탁 의자 밑에 날아가 앉는다. 나는 또 소리 없이 엉금엉금 기어 메뚜기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을 조용히 들어 올려 탁, 덮쳤다. 늦었다. 아니 메뚜기가 한 걸음 빨랐다. 휙 날아오른 메뚜기가 이번엔 냉장고 앞에 내려앉는다. 다시 기어가다가 그만 멈추었다.

 

 

 

‘나랑 같이 살자고 들어온 건 아닐까.’

내 생각이 휙 거기에 가 미쳤다.

나는 그만 일어섰다. 문을 열어놓았더니 그 문 안으로 메뚜기가 날아든 모양이다. 벼메뚜기가 사는 논이라면 여기서 멀다. 그가 혼자 놀러오기엔 꽤 먼 거리다. 얼마 전에 벽장골 논벌에 가 봤는데 반 정도는 이미 수확이 끝났다. 어쩌면 살던 터를 잃어버린 메뚜기가 벽장골 언덕을 날아올라 우리 집까지 온 게 아닐까. 아니면 나의 무료함을 달려주러 우리 콩밭에 살던 메뚜기가 잠깐 들른 것은 또 아니고.

그러고 보면 망을 쳐놓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메뚜기를 억지로 내칠 이유야 없을 듯 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또 괜한 생각이 일었다. 냉장고 밑이 걱정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메뚜기도 냉장고 밑의 구조를 공부했을 리 없다. 그러니 멋모르고 슬금슬금 기어들어갔다가 어느 엔진 파이프를 타고 돌다가, 어느 코일을 건너가다가 괜히 날갯죽지가 걸려, 아니 다리가 걸려 못 나오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밤,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해 부스럭 부스럭 몸을 뒤척이면 그 소리를 또 어떻게 견뎌낼까, 그런 잡념이 들었다.

 

 

 

 

나는 다시 살금살금 다가가 손으로 메뚜기를 덮쳤다. 잡았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발버둥치던 메뚜기가 가만 있는다. 내 손이란 어떤 손인가. 예전 시골 벼논에서 메뚜기를 잡던 그 날쌘 손이다. 메뚜기는 내 손의 무지막지한 전과를 감지하고 있는 걸까. 이 손이 저들의 선조를 잡아 닭에게 던져주던 손임을, 이 손이 저들의 선조를 포획해 볶아먹는 일에 공을 세운 손임을 아는 걸까. 내 손안이 숨죽이듯 조용하다. 

갑자기 내 손이 무섭다. 나는 이 안성에 내려와 텃밭에 나는 풀이 잡초라며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뽑아제꼈다. 내 입을 봉사하기 위해 일평생 나를 위해 희생해온 손이지만 그러느라 내 손은 남의 목숨을 빼앗았다.

 

 

 

농부의 아내로 살았던 이 땅의 어머니들이 먼 산 산골짜기에 묻혀 사시는 부처님을 찾아가 살생을 속죄하며 사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농사라는 것을 지어먹고 살자면 작은 목숨에 손을 대지 않고는 실은 하루도 살아내기 어렵다. 아무렇지 않게 날벌레의 목숨을 빼앗고, 풀숲을 기는 달팽이를 밟고, 순무에 끼는 벌레를, 배추밭의 배추벌레를 건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와 내 자식의 목구멍에 먹을 것을 들일 수 없으니까.

해마다 사월이 되면 어머니는 머리에 쌀말을 이시고, 집에서 오십 리 밖 장덕리 부처님을 찾아가 하룻밤 깊도록 그 죄를 빌고 돌아오셨다. 비록 미물이지만 남의 목숨을 건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촌 아낙들에겐 그런 아픔이 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 중심 논리로 세상을 보기에 다들 그깟 것쯤 해버리고 만다. 나도 역시 그렇다. 때로는 그런 내가 또 무섭기도 하다.

 

 

 

나는 나와 함께 살러 내 방에 들어온 메뚜기를 붙잡아 쥐고 기어이 밖으로 나왔다. 동네 배추밭에 던질까 하다가 농약이 무서울 것 같아 손바닥만 하지만 우리 콩밭에 풀어주었다.

목숨을 하나 살렸다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며 문을 콩, 닫는 나의 소행을 본다. 메뚜기를 위해 오랜만에 선한 일을 한 척 하지만 실은 나 혼자 내 집에서 살겠다는 야박스러움이 콩, 하게 들려 내가 밉기만 하다.

미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이 마음이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상으로 거침없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무심함이 실로 무섭고도 미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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