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조금 모자라는 듯한 인생

권영상 2014. 11. 3. 10:05

조금 모자라는 듯한 인생

권영상

 

 

 

딸만 하나인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가정사를 경험한다. 그 중 하나가 밥에 관한 일이다. 만일 내게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인 내가 먹는 일을 자식인 아들도 척척 따라주며 식성을 공유할 거다. 내가 순대국을 청하면 순대국을, 추어탕을 청하면 추어탕을, 혹여 보신탕을 청하여 먹는다면 아들도 군말 없이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근데 딸과 아내는 다르다. 그들은 그들 고유의 식성대로 산다. 암만 내가 우겨도 저들의 식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밥그릇에 관한 문제다. 분명히 우리 세 사람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음식을 시킬 때에 보면 2인분이다. 한 사람분은 나고, 나머지 한 사람분은 아내와 딸아이다.

 

 

 

“남기더라도 각자 1인분씩 시키자.”

나는 그 주의이다. 밥이란 게 뭔가? 목숨이다. 앞앞이 목숨을 받아 세상에 나왔듯이 밥도 앞앞이 제몫을 받아야 제격이다. 그래야 옳다. 집으로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때도 그렇다. 집이니까 이것저것 눈치 볼 것 없이 딱 2인분이다. 짜장면이든 우동이든 나 하나, 그리고 아내와 딸아이 그렇게 하나다. 그렇게 받아든 음식을 아내와 딸아이는 으레 두 개의 빈 그릇에다 하나를 나누어 반씩 먹는다. 왜 한 사람 몫씩 만들어진 음식을 부족하게 나누느냐고 말하지만 역시 내 생각과 다르다.

“이렇게 반씩 나누어 먹는 게 좋아.”

아내가 정색을 하며 그런다.

“아빠, 나누어 먹는 일에 신경쓰지마.”

딸아이도 제 엄마를 보며 내게 한 마디 한다.

나는 그쯤에서 더는 참견 안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니까. 이건 음식값을 절약하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번, 동햇가 사천에 갔을 때다. 거기 오징어 물회가 좋다는 정보를 먼저 찾은 건 딸아이였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그걸 찾았고, 나와 아내는 거기가 고향 근처니까 이미 한두 번 먹어본 경험이 있었다. 서울서 세 시간 거리. 오랜만에 간 곳이며, 우리도 과거에 감탄했지만 남들도 감탄했다는 물회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을 음식점 앞에서 또 기다렸다. 그러고 간신히 자리를 얻어 음식점 안에 들어갔을 때다.

“우리 물회 2인분요.”

아내가 주문하며 빈 그릇 하나를 더 요구했다.

“아니, 여기서도?”

오래 기다린 노고를 생각해서도 3인분을 시켜야 마땅했다. 더구나 그걸 먹자고 점심 시간을 한 시간이나 비켜 있었다.

“여보, 우린 조금 부족한 게 더 좋아.”

아내는 한사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는 우리 집 형편이거니 하고 말았다.

 

 

 

그 오랜 뒤였다.

오늘  문학월간지 <유심>11월호에서 황금찬 시인의 근작시를 읽었다.

 

 

“솔밭 모래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둘이서 마셨지.

모자라지

한 잔 더 할까.”

 

 

‘커피잔의 구름’이라는 시의 앞 부분이다.

나이 구십을 오래 전에 넘긴 노시인의 이 시를 앞에 두고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커피 한잔을 나누어 마시고 일어서려니 좀 부족했다. 모자라지, 한잔 더 할까? 그러는 이 시에 인생의 깊은 의미가 느껴졌다. 인생이란 나누어 마신 커피 한 잔처럼 조금 모자란 듯 해야 그리운 거다. 내 몫의 커피 한 잔을 나 혼자 다 마시고난 인생이 아니라 나의 노력으로 얻은 커피를 그 누구와, 그가 동반자건 친구건 그와 나누어 먹다보면 조금 모자란 듯한 결핍이 있게 마련이다. 조금 비워두는 그 아쉬움. 그것이 인생의 목마름이거나 향수이거나 그리움의 여백이라고 시가 말하는 듯하다.

 

 

시를 읽고난 후, 나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집 바깥에 나가 식사를 할 때마다 아내가 왜 딸아이와 반 그릇씩 밥을 나누어 먹는지를.

예전, 식구가 많을 때는 밥이 적어 식구수대로 밥그릇에 밥을 뜨지 못하고 큰 양푼에 담은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적은 밥인데도 밥을 다 먹고나면 늘 밥이 조금 남았다. 서로를 위해 그 밥을 남기고 수저를 놓을 때의 그 약간의 허전함. 아내는 그것을 딸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엔 결핍의 그리움이란 것이 있다. 딸아이가 결혼을 하여 멀리 떠나간다면 그 모자라는 듯 했던 식욕의 결핍을 가끔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 결핍속에 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랑이, 향수가 오히려 넘쳐나겠지.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인생의 목마름은 대체로 그런데서 오는 것 같다. 나의 몫이라며 내 인생의 술잔을 나 혼자 다 마셔버리는 못난 생각일랑 이제는 버려야겠다. 그 누구와 함께 나누어 마시느라 조금 부족해지는 결핍을 사랑해야겠다.

“모자라지?

한 잔 더 할까?”

그러나 한 잔 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결핍의 미학.

나이는 나보다 썩 아래지만 살아볼수록 아내의 생각은 남자인 나보다 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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