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씨 뿌리는 사람의 도덕성

권영상 2014. 11. 13. 11:27

씨 뿌리는 사람의 도덕성

권영상

 

 

 

 

 

아침마다 일어나면 창문부터 연다. 서리 때문이다. 입동 지난 지도 오랜 11월 중순이다. 어제는 마당이 눈이 내린 듯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동네 배추밭에도, 마을 지붕에도 된서리가 내렸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역시 서리다. 데크 위에 내린 서리가 1센티는 될 것 같다. 몸이 서늘할 정도로 시리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드렁해졌다.

 

 

 

옷을 두텁게 입고 방을 나섰다. 텃밭에서 크는 완두콩 때문이다. 어떻게 심은 게 11월인 지금에 와서 꽃이 한창이다. 암만 꽃이 피었어도 서리에서 비켜날 수 없었다. 초록잎과 하얀 꽃 위에 잔인하게도 서리가 가득 내렸다. 나는 서리에 손을 대어보았다. 손끝이 싸늘하다. 사람 손끝이 싸늘한데, 피어나는 꽃들은 또 얼마나 차가울까. 그렇게 생각 안 하려해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완두콩 보기에 미안하기만 하다. 나의 불찰이다. 나의 부주의로 멀쩡한 완두콩이 밤마다 된서리에 떨고 있다.

나는 쩝, 입을 다시며 돌아섰다.

 

 

 

 

마당에 옮겨 심은 부켄베리아도 며칠 전에 내린 서리에 그 좋던 꽃이며 잎이 다 녹아버렸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기엔 너무 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여기다 옮겨심어 둔 거였다. 날마다 꽃을 보는 재미로 가을을 넘기다가 그만 변을 당하고 말았다. 아열대에서 크는 부켄베리아에게 있어 동북아시아의 늦가을 서리는 무서운 변고다. 그렇기는 해도 다시 화분에 심어 서울로 옮겨오면 되지만 텃밭의 완두콩은 사정이 다르다.

 

 

 

완두콩은 지난 8월말에 심었다.

종묘가게에서 구입해 쓰던 종자봉지를 정리하다가 본 게 완두콩이다. 파종시기가 4월과 9월이었다. 그때가 다행히 8월이었고, 마침 배추씨앗을 넣지 않고 둔 빈 밭이 있었다. 지난 해 배추벌레에게 마흔 포기 배추를 송두리째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빈자리에 완두콩을 심기로 했다. 종자씨앗 봉지에 적힌 9월 파종시기를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여유 있게 8월말쯤 파종을 했다.

 

 

 

 

그 후로 완두콩은 잘 커줬다. 어느 정도 자라자, 지주대를 세우고 덩굴손이 잡을 수 있도록 두 단으로 비닐 끈도 쳐주었다. 완두콩 꽃이 한창 필 적엔 효소로 만들었던 뜰보리수 열매를 건져내어 완두콩밭에 뿌려주었다. 그 설탕물에 밴 달콤한 보리수 열매 단맛을 보러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서른 마리, 때로는 쉰 마리. 나비들이 떼 지어 모여들었다. 주로 표범나비들이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단 설탕 맛에 취해 완두콩밭을 오갔으니 꽃가루받이도 왕성했을 듯싶다.

가끔 그런 완두콩밭에 나가면 내 기척을 느낀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마치 날염이 잘 된 홑이불을 풀썩 들어 올리듯 나비 떼들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곤 했다. 표범나비만이 아니다. 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루 종일 닝닝거리며 완두콩밭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그 일은 완두콩에게 좋은 한 때임이 분명했다.

 

 

 

 

10월이 다 가도록 나는 때 좋은 가을만 생각했다. 늘 나비들이 날아들고, 늘 따스한 가을볕과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만 불어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11월로 접어들면서 심심찮게 철원지방과 대관령의 첫서리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긴장했다. 완두콩을 볼 때에 ‘참 예쁘기도 하지’ 하던 감탄이 ‘결실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수확을 못할까봐 애태우는 걱정이 아니라 이 세상에 와 아무 결실도 못 맺고 된서리에 그냥 가버릴 완두콩의 인생에 대한 조바심이었다.

 

 

 

 

그게 나를 초조하게 했다. 완두콩에게 벌 나비가 날아들던 ‘좋은 한 때’가 있었다면 거기에 걸맞은 좋은 결말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가끔 젊은이들의 죽음을 보며 이 세상을 의심하곤 한다. 본론이 없고 서론만 있는 세상이라고. 세상에 태어나 공부 공부에 시달리고, 이제 뭘 좀 해보려고 힘들게 힘들게 꿈을 찾아내어 그 꿈을 쫓아가던 중에 생애가 끝나고 마는 이승살이를 그렇게 원망한다.

어쩌면 내가 심은 이 완두콩의 생애가 그렇게 서론에서 끝나고 말 것 같아 나는 날마다 걱정이다. 완두콩의 형편이 여기에 이른 데에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 크다. 그의 생이 나 때문에 여기 이쯤에서 끝나야 한다면 나는 앞으로 닥쳐올 겨울 내내 그 일로 고민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겐 가끔 내가 겪는 이런 엄중한 도덕성에 시달릴 때가 있을 듯하다. 나는 너무도 섣부르게, 좋은 결말에 이르지 못할 씨앗을 뿌리고 말았다.

오늘 서리가 내렸으니 내일도 내릴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완두콩에 대한 글을 다급하게 다시 읽었다. 9월 파종에 관한 글이 분명히 있다. 가을에 심어 월동을 한 뒤 이듬해 5,6월에 수확한다는 글이다. 이 지푸라기 같은 글에 매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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