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연기
권영상
서울 갈 일을 내일로 미루었다. 서울 일이 미루어졌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스물네 시간이라는 하루가 공으로 떨어진 느낌이다. 처음엔 이 생광스런 시간을 어쩔꼬 했지만 시골살림이란 찾아보면 손 갈 일이 적지 않다. 오전엔 집 주변 설거지를 하고, 오후엔 콩을 깠다. 때를 맞추지 못해 늦어진 콩이 서리를 맞은 채 텃밭에 그냥 있다. 콩잎만 무성한 콩을 보며 오갈 때마다 콩꼬투리를 만져보았다. 속이 비었다. 그래도 간혹 콩꼬투리의 볼록한 콩을 까 밥을 지을 때에 넣어먹곤 했다.
그 일을 오늘 몰아하려는 거다. 밥 할 때마다 콩을 깐다는 일도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모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시간을 풋콩 까는데 쓸 생각이다. 볕드는 양지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뽑아온 콩포기의 콩을 깠다. 콩 한 대접을 까고도 시간이 풍족히 남는다.
씨앗을 받으려고 거꾸로 매달아놓은 청오크상추와 적상추가 눈에 들어왔다. 보름쯤 전에 으름덩굴에 매달아 놓은 거다. 내일 모레 비 온다니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씨를 받아두는 게 좋을 듯싶다. 신문 한 장을 깔아놓고 그 위에다 바심을 했다. 받을 만큼 씨앗을 받아선 마른 흙먼지며 부스러기들을 바람에 날렸다. 어머니셨다면 어레미에 받혀 큰 부스러기는 걷어내고, 다시 흙먼지를 바람에 날리셨겠다. 가만히 보니 어머니가 하시던 그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씨앗만 말끔히 골라내어 씨앗봉투에 넣었다.
그제야 그 좋던 가을해도 기운다. 수돗가에 홀로 앉아 찬물에 손을 씻고 안마당으로 들어설 때다. 길 건너 최씨 아저씨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른다. 뭉긋뭉긋 위로 오르더니 북향으로 꺾여 파랗게 날아간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무연히 굴뚝 연기를 건너다 봤다. 이쪽은 조용한데 산자락 밑 최씨 아저씨네 집 쪽엔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파란 연기가 폴폴폴폴 날아간다. 얼마 남지 않은 저녁햇귀가 그 집 높다란 굴뚝 끝에 붙어 있다. 밤이 오기 전에 방에 불을 넣어두는 모양이다. 늦은 가을이다. 낮 기온은 제법 따스해도 저녁 무렵만 되면 기온이 금방 떨어진다.
건너편 산 참나무 숲에 얼씬대던 저녁 빛도 이내 사라지고 마을엔 어스름이 내린다. 그리고 굴뚝 연기는 쉬지 않고 아래쪽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폴폴폴폴 달려간다.
이 때쯤이면 어릴 적 고향집 굴뚝에도 연기가 올랐다. 어머니는 무쇠 솥에 저녁밥을 지으시고, 아버지는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시느라 불을 때셨다. 그럴 때에 먼데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보면 뒤란 벽돌로 쌓아올린 높다란 굴뚝에선 뭉싯뭉싯 하얀 연기가 올랐다. 오늘 같이 조용한 날이거나 축축한 날이면 연기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여섯 모여 사는 집의 굴뚝 연기 모두 무거운 안개처럼 마을을 휘감으며 가라앉았다. 그때의 고향마을 풍경이란 지붕 위쪽의 세상만 보였다. 지붕보다 높은 가죽나무나 살구나무 우듬지, 사과를 다 딴 과수원 이층 다락방집, 몇 안 되는 전봇대와 그 위를 나는 동네 저녁 까치들, 그리고 그 너머의 어둑하게 물드는 구름장만 호젓이 보였다.
“밥 먹어라!”
밥내 배인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가 막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 썰렁한 시골 골목길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신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저녁밥이 아니라 지금은 내가 밥을 해먹어야할 처지다. 저녁밥 걱정은 없다. 아침에 전기밥솥에 해놓은 밥이 아직도 충분하다.
나는 김 씨 아저씨네 굴뚝 연기가 사라질 때를 기다려볼 양으로 현관문 앞 의자에 앉았다. 허리를 뒤로 젖히고 팔짱을 꼈다.
굴뚝 연기가 솟는 시골의 가을 저녁은 차분하다. 열정이 천천히 식어가는 때다. 해의 기운도 식어갈 때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누그러질 때다. 누구도 새삼스레 성을 내거나 조바심치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이 무렵엔 다만 용서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질러 집을 나갔다고 해도 돌아오는 그를 용서해야할 시각이 이 저녁 무렵이다.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들에서 뛰어 놀다가
터무니없이 기다랗게 쓰러져 있는
내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면 보이던
어머니의 손짓 같은 연기
하늘로 멀리멀리 올라가지 않고
대추나무 높이 까지만 피어오르다가
저녁때도 모르는 나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논두럭 밭두럭을 넘어와서
어머니의 근심을 전해주던 저녁연기
이게 바로 시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두레반 앞에 앉으면
솔가지 타는 내가 배어 있는
어머니의 흰 소매에서는 아련한 저녁연기가
이냥 피어 오른다.
오탁번 시인의 ‘저녁연기 같은 것’이라는 시다. 저녁연기 같은 것이야말로 시라고 말하는 시다. 저녁연기 같은 것이란 무엇인가. 가난과 평화로움과 모자라는 밥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스며있는 것이 저녁연기이며 그것이 곧 시라는 것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핵심은 저녁 무렵, 배고픈 자식에게 넉넉히 먹일 밥을 짓지 못해 근심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것이다.
어머니는 늘 그것이 안타깝고, 죄를 짓는 것처럼 미안하고, 근심이고 걱정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 어디선가 ‘밥 먹어라’하고 불러주길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 시라는 것이다. 굴뚝 연기가 솟는 저녁 무렵은 어머니의 시간이다. 속죄의 시간이며 용서의 시간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의 시간이다. 또한 마음이 먼 고향으로 가는 시간이다.
“밥 먹어라.”
이 소리가 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도 의자에서 일어나 안으로 든다. 어둑해진 방에 불을 켜고 밥그릇에 밥을 푼다. 밥 냄새에서 오래전에 잊고 말았던 어머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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