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옥도 갔는데 한 번 만나
권영상
전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번 만나 밥이나 먹자는 거다. 전화라곤 안 하던 친구다. 나도 바쁘고 그도 바빴다. 마지막 통화를 한지 1년은 됐을 성 싶다. 대전 어디쯤에 매제가 운영하는 회사에 운 좋게도 자리가 생겨 떠나갔었다. 그때 떠나기 전에 밥이나 한번 먹자는 내 청을 거절할 만큼 그는 새로운 직장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 후, 그와 통화할 때면 ‘다음에, 지금은 너무 바빠.’ 그랬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도 그는 바빴다.
그러던 그에게서 오늘 전화가 왔다.
“탤런트 김자옥도 갔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살면 뭐하겠나 싶어. 한 번 봐.”
그가 통화 중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 스케줄에 만날 날짜를 기록했다. 늘 ‘지금은 바빠’ 하던 친구가 탤런트가 떠난 것 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지 뚱딴지 같은 통화를 했다. 십대 아이들처럼 연예인을 들먹이던 그를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그러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친구와 내가 쉽사리 만날 날짜를 정한 배경에도 어쩌면 그분의 죽음이 작용한 것 같았다.
신문에 난 그분의 죽음을 보고 실은 나도 충격을 받았다. 대놓고 충격받았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나를 짠하게 움직이는 약간의 허전함이 있었다. 어제같이 텔레비전에서 쌩쌩하게 연기를 하던 분이,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예쁘고, 귀엽고, 공주 같기만 하던 분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놀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비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가는 수가 있구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이렇게 덧없이 가는 거구나 하는 이 엄연한 사실 때문에 정신이 아득했었다.
그 분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후로 내 식습관도 바뀌었다. 대장암을 유발한다는 붉은 살 육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밭에서 손수 기른 상추며 겨자채를 부지런히 먹고 있는 나를 보았다. 잠깐 이러다 마는 게 내 성미인 줄 알면서도 나의 이런 모습에 제일 놀란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동시대를 살던 인물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내게도 있었던 듯 했다.
몇 년 전만해도 저녁 식사를 마치면 모 방송사 일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즐겨 보곤 했었다. 그 시트콤 속의 풍파고등학교 ‘김자옥 교감’과 그 학교에 식품자재를 납품하는 ‘이순재 사장’의 코믹한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회에선가 김자옥 교감이 이순재 사장과 헤어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조차 코믹하게 연기해 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 헤어져야하는 걸
서로가 말은 못하고,
마지막 찻잔 속에 서로의 향기가 되어
진한 추억을 남기고파.
우리는 서로 눈물 흘리지 마요…….”
그녀는 그렇게 그 삽입곡의 가사처럼 갔다.
오늘 늦게 퇴근한 아내가 절친하게 지내는 대학 동창이야기를 했다. 방학에 브라질로 여행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편인데 병원에 가봤자 안 좋은 소리 들을까봐 퇴근하면 집안 일로 약한 몸을 극복한다는 이다. 그이가 왜 난데없이 해외여행을, 그것도 그 먼 브라질을 가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김자옥 가는 걸 보고 충격 먹었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이나 아내나 나나 내 친구나 모두 그 탤런트와 같은 60대다. 그와 함께 같은 시대를 호흡하며 살아온 세대들이다. 우리 세대의 아이콘을 잃어버린 충격을 그도 받는 모양이었다.
특별히 나만 그런 이들 속에서 살고 있는 건가. 연말도 다가오는데 술 한 잔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자는 전화를 종종 받는다. 그들의 입에서도 빠짐없이 그 탤런트 이야기가 섞여 나왔다. 이 신드롬 같은 현상이 언제 그치게 될지는 모르지만 60대가 살아내기에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즐겁기 만한 것은 분명 아니다.
사람이 아니라 꿋꿋한 나무를 한 그루 사랑해야겠다. 이 세상에 오고 가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이럴 때는 싫다. 수석을 사랑하거나 하늘을 사랑하거나 이념을 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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