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보리수나무를 찾아온 오목눈이
권영상
잔디에 손을 보려면 세워놓은 차를 뒤로 좀 빼야 했다. 차는 언제나 뜰보리수나무가 있는 마당귀에 세워두었다. 거기 차를 빼러 가는데 뜰보리수나무 아래 덤불에서 깝죽대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오목눈이였다. 너무도 우연이었다. 거기에 오목눈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적 없는 산비탈 찔레덤불에서나 사는 오목눈이를 우리 집에서 보다니!
나는 가만히 서서 오목눈이를 봤다. 오목눈이도 불쑥 나타난 나를 보았을 텐데 날아갈 생각을 않고 덤불 숲을 콩콩, 건너뛰며 논다. 차를 뒤로 빼어놓고 다시 그쪽을 봤다. 나무 아래 영춘화 덤불에서 쫍쫍쫍 운다. 밤톨만치 작다. 작아 그런지 목소리 역시 작다. 간신히 들어야 들리는 울음소리다.
“어디 가 살다가 이제 왔냐?”
오목눈이가 반가웠다.
나는 밭을 넓히느라 파낸 잔디를 잔디가 죽은 빈자리에 심어나갔다. 왠지 좀 전 오목눈이한테 한 말이 자꾸 목에 걸렸다. 아침에 가족에게 한, 마음을 상하게 했을 듯한 말이 문득 떠올라 목에 걸리듯 오목눈이에게 한 말이 자꾸 걸렸다.
어디 가 살다가 이제 오다니! 텃새인 오목눈이는 어디 가 살다가 여기로 온 게 아니고, 여기 뜰보리수나무 밑에 늘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내가 못 보았을 뿐이다. 너무 큰 것만 쫒고, 너무 큰 욕심만 내며 사느라 오목눈이처럼 작은 새에 눈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 둘레에 들깨를 듬성듬성 심어두었고, 코스모스를 심어두었었다. 그러니 그 안에 사는 오목눈이를 내가 못 본 게 당연하다. 그뿐인가. 사람이 들락이지 않는 마당귀에 뜰보리수나무가 있으니 그쪽으로 눈을 줄 일도 없었다.
나는 거기에 오목눈이가 있는 것도 모르고 뜰보리수나무 한 켠에 풀거름더미를 만들었다. 그래서는 집 주변에서 나오는 풀을 때때마다 거기에 쌓았다. 며칠 전에도 가을 설거지를 하느라 마른 쑥대궁이며, 코스모스, 호박덩굴, 마른 콩대, 고구마 줄기를 거기다 쌓아올렸다. 그랬는데도 오목눈이는 달아나지 않고 거기를 은신처로 살았던 모양이다.
잔디를 옮겨심다가 허리를 펴고 또 한번 보리수나무 밑을 봤다. 여전히 오목눈이가 촘촘한 가지 사이로 옮겨앉으며 놀고 있다. 이렇게 척 보면 보이는 것을 나는 여태 못 보았다. 볼수록 작고 귀엽다. 빤히 보고 있는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멈칫하던 오목눈이가 그만 홀짝 날아가버렸다. 몸을 기울여 가는 방향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 잔디 옮겨심기를 했다.
오목눈이가 여태 여기 살았던 건 어쩌면 보아도 못 보는 내 눈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런 나의 무심한 눈을 알았기에 오목눈이는 내가 콩대를 뽑아 풀거름더미에 쌓든, 마른 꽃대를 뽑아쌓든 안심했던 거다. 근데 오늘 내가 오목눈이를 그만 보아버렸다. 처음 보기 어렵지 한번 보아버리면 그 어떤 순간에도 오목눈이가 척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오목눈이가 날아간 곳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다시 날아올까. 혹시 이 길로 아주 떠나간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이 되었다.
여태 잘 입어온 티셔츠에 작은 흠집난 걸 보고난 뒤부터 그 옷을 멀리 했던 경험이 내게 있다. 그 옷을 집어 들면 그 흠집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흠을 본 내 눈이 특별히 애착이 가던 옷을 멀리하게 만든 꼴이 되었다.
잘 사는 부부들은 대부분 근시라 한다. 그러기에 지근거리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도, 말소리도, 세세한 몸짓도 못 본다고 한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근시를 가졌기 때문에 다툴 일이 있어도 다투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뜰보리수나무에 가 톱으로 전지를 하고, 그 곁에 풀거름더미를 만들어 놓고 요란을 떨어도 오목눈이가 안심하고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거기에 반해 우리 부부는 현미경 같은 눈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사소한 것들까지 너무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산다. 보아도 못 보는 근시의 눈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도 확대해 보려고 애쓴다. 그러니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을 가지고도 티격태격이다.
야생의 동물들은 한번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그곳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한다. 어쩌면 오목눈이도 내 눈길을 의식하고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무심해서 답답하다’ 하다는 말도 있지만 무심해서 상대방을 살린다는 말도 있다. 내가 너무 무심해서 그 동안 오목눈이와 살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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