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녀에게 가을이 왔다

권영상 2014. 11. 17. 17:54

그녀에게 가을이 왔다

권영상

 

 

 

 

 

거기 여자가 서 있다. 지난 월요일 아침에도 서 있었는데 닷새가 지난 토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거기 서 있다. 그들의 평균키로 본다면 큰 키가 아니다. 그렇다고 작은 키도 아니다. 평균치의 키를 가졌기에 그녀는 늘 시선 밖에 머물러 있었다. 보면 보이거나 보아도 보이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평범한 키의 그녀는 늘 한 가지 색의 평범한 옷만 즐겨 입었다. 녹색이었다. 4월 어느 날, 그녀가 처음으로 새 옷을 입고 나왔을 때는 산뜻한 빛깔 때문에 뭇사람들의 눈길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이후론 전혀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녹색의 옷은 햇빛이 강렬해질수록 얼룩이지거나 촌스럽게 바래어갔다. 그런 촌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에게 누가 눈이라도 한 번 줄까.

 

 

 

그녀는 촌스러웠다. 촌스러워서 애교도 없었다. 애교도 밝고 예쁜 옷을 입을 줄 아는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거다. 늘, 아니 일 년 내내 추레한 옷을 입고 사는 여인에게는 애교라는 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태생이 그러하다면 입술이라도 빨갛게 발라보든가, 머리칼에 매운 향수라도 뿌려보든가 그래야할 테지만 그런 욕심도 없다. 한 자리에 박혀 사느니 가끔 집 밖을 들락이거나, 늦은 밤에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올 때 사내들은 긴장한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욕심이 없다. 여자는 운명처럼 한 자리에 발을 디디면 떠나지 않는다. 음식 조리 냄새가 풍기는 그 자리. 그녀에게선 김칫국물 냄새가 나고 된장국 냄새가 나거나 미역을 치대느라 몸에 밴 찝찔한 바다 냄새가 전부다.

 

 

 

“도심의 백화점이라도 나가 봐요.”

사내는 몇 번이나 그녀를 위해 소리치곤 했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 보라구요!”

그랬지만 그녀는 슬프게도 요지부동이었다. 요지부동은 그녀의 철학이었다. 그녀에게도 철학이 있었고 이념이라든가 신념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가족을 지키러온 전사처럼, 귀가하는 발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처럼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그걸 행복이라 믿었을지 모른다. 마치 가족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기로 작정한 여인처럼 그녀는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미덕을 더 높이 사랑했다.

 

 

 

가끔 사내는 아무도 모르게 백화점 언저리에 있는 옷가게에서 자신의 눈에 맞는 옷을 사 그녀에게 선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옷을 벗는 것이 정조를 버리는 것인 양 한 가지 옷을 고집했다. 그런 대가로 시대에 뒤떨어진다느니, 사내를 사랑할 줄 모른다느니, 돈에 떠는 여자라느니 무수한 험담을 자청하며 살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불어 닥치는 7월의 거친 바람과 같았고, 지루한 폭염과 폭우와 같았다. 그럴 때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맞설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세월은 지나갔다. 뻗쳐오르던 고집도 꺾이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던 이념도 의지도 무너졌다. 그녀에게도 가을이 닥쳐왔던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녹색만을 고집하던 그녀도 끝내 옷을 벗었다. 어느 가을비 내리고난 아침, 그녀는 노란 의상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의상은 한낮으로 갈수록 나이에 걸맞게 점차 황금빛으로 빛났다.

좀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녀에게도 어딘가 그리운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먼 길을 떠나기 직전의 여행자처럼 설레는 빛이 온몸에 배어있었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전에 없이 떨리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지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보이는 고층 데이터 빌딩 앞에 서 있다. 거기가 그녀가 늘 지켜온 자리다. 그녀는 지난 계절이 다 가도록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 번도 멀리 떠나보겠다는 마음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런 그녀가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있는 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는 차가 그녀 옆에 서 주기만 한다면 허리를 굽혀 차에 오를 것 같이 조바심을 태우고 있다. 가을이 지나가는 11월, 이제야 그녀는 그녀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 난방비 걱정이 없는 서너 달을 쉬어보고 싶겠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을 연민하는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고, 세상일에 휩쓸리며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런 것들을 오랫동안 고민해 보고도 싶겠다.

 

 

 

이제 그녀가 떠나면 우리는 그녀를 잊고 살겠다. 그녀가 산다는 일에 대해 홀로 고민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잊고 살겠지. 그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그녀가 사라졌다고 비탄할 사람은 더더구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녀 없는 겨울을 나야한다.

그런데 다음해 봄이 오면 그녀는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까.

여인을 닮은 것처럼 은행나무 한 그루가 아직도 혼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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