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반닫이와 어머니의 3층장
권영상
20대 초반, 그 무렵 나는 담배를 즐겨 피웠다. 10대 후반에 배운 담배니까 한창 담배에 맛들릴 때였다. 그 때, 아버지 연세는 지금의 내 나이셨다. 아버지는 더 이상 추운 사랑방에서 혼자 주무실 수 없어 그 방을 내게 넘기고 따뜻한 안방으로 가셨다.
나는 사랑방을 혼자 독차지 하였다. 거기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이 찾아오면 조용히 술도 마시고 그랬다. 그럴 적에는 으레 담배가 따랐다. 밥은 굶어도 담배는 굶을 수 없었다.
때로 담배가 떨어지면 공포스러울 만큼 흡연 욕이 일어났다. 호주머니를 열 번 뒤지고, 방바닥을 열 번 뒤지고, 서랍을 열 번 뒤져도 담배를 못 찾으면 정신이 산란해진다. 주머닛돈을 털어 눈길을 헤치고 1킬로 너머에 있는 마을 담뱃가게에 가곤했다.
그런데 담배도 떨어지고 주머니도 텅텅 빌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게 마지막 카드가 있다. 이건 최후의 방법이다. 불효거나 패악의 짓이다. 아버지의 담배를 건드는 일이다. 아버지의 담배는 뒷사랑방 책반닫이 속에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으면 거기에 손을 댔다.
미닫이 벽장문을 열면 그 안에 소나무 향내 가득한 아버지의 책반닫이가 드러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주칠을 한 ‘강원도책반닫이’다. 일개 농사를 짓는 아버지셔도 반닫이에선 남성적 위용이 풍겼다. 두 팔 길이의, 앞으로 여닫는 반닫이다. 여닫는 문이 접히는 양쪽에 화분 모양의 검정 무쇠장석이 있다. 그 위쪽엔 박쥐 문양 장석에 반달고리 손잡이가 양쪽에 있고, 그 가운데에 검정 원통자물쇠가 큼직한 불알처럼 달려 있다.
자물통은 고집스럽게 꽉 잠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반닫이 받침대 밑에 손을 넣으면 그 안에 쇳대가 있다는 것을. 쇳대를 꺼내 자물통을 열면 서너 보루 넣어두신 담배에서 한 갑쯤 슬쩍하는 일은 쉽다. 그런데도 나는 성큼 책반닫이를 건들지 못했다. 책받닫이의 위용 탓이다. 책반닫이 앞에 서면 마치 아버지 앞에 마주 서는 듯 불편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속에 집과 땅에 관한 문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나를 두렵게 했다.
쇳대로 자물통을 따고, 앞닫이를 열면 위쪽에 세 개의 서랍이 있다. 서랍엔 간단한 영수증이나 인주, 도장, 아버지의 낡은 도민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엔 책이거나 옷을 개어 넣는 공간이 있다. 아버지가 사시 사계절에 입으시는 의복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그 의복을 들추면 안동 권씨 대동보나 파보, 또 집안 문서가 나온다. 그리고 그 맨 밑엔 아버지의 ‘옷’이 있다. 저승에 가실 때 입으신다는. 일찍 해놓으면 오래 사신다고 어머니가 길쌈하신 고운 엿새삼베로 만든 옷이 그 안에 있다. 그런 까닭에 감히 흡연욕 하나만으로 아버지의 책반닫이를 성큼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책반닫이는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에 해 온 궤다. 사개물림이 반듯하여 어디 틈 하나 없다. 붉은 주칠이 된 소나무 궤의 적당한 위치에 박혀있는 검은 색 나비 문양이거나 박쥐 문양이거나 화분 문양의 무쇠 장석의 어울림은 견고한 반닫이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런 까닭에 한 눈에 보기에도 그 무게감과 더불어 남성적 침묵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가 두시는 담배는, 고개를 들이밀지 않으면 안 보이도록 여닫이문 쪽에 바짝 붙여 놓여 있었다. 암만 그래도 이미 담장을 넘은 도둑처럼 나는 담배 보루를 꺼내어 귀신 같이 봉투를 뜯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갑을 뽑아내고는 나머지 담뱃갑들을 양쪽으로 밀어놓으면 아버지는 정말 모르셨다. 어쩌면 아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한 대 피울 때의 담배 맛은 나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취하게 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반닫이도 열어볼 때가 있다. 어머니의 반닫이는 뒷방에 있다. 이것도 어머니가 결혼해 오실 때에 가져오신 소박한 검은색 반닫이 3층장이다. 위로 두 층은 좌우로 여닫는 합문이다. 그중 위쪽장의 상부엔 세 개의 여닫이 서랍이 붙어있다. 주로 어머니가 쓰시는 얼레빗이나 참빗, 어머니가 즐겨하신 은비녀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맨 아랫장은 상하로 여닫는 앞닫이다. 물론 3층장 모두 서랍을 빼고는 옷을 넣는 옷장이다.
내가 어머니의 반닫이 장을 여는 데는 까닭이 있다. 어머니가 읽으시는 책들이 보고 싶어서다. 어머니는 친정에서 몇 권의 책을 손수 필사해 오셨다. 박부인뎐과 임진록, 그리고 꽤 여러 개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 화전가들이다. 어찌 보면 가보나 마찬가지다. 글을 읽으실 줄 모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충분히 가보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그 귀한 책들을 늘 반닫이 안에 넣어두셨다.
어머니는 긴 겨울밤 등잔불빛에 그 책을 꺼내어 읽으셨다. 물론 내 어릴 적부터 나를 무릎에 뉘이시고 읽어주시기를 좋아하기도 하셨다. 내가 알기에 어머니는 이 책들만도 수십 수 백 번을 읽으셨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이 두어 권의 독서만으로 평생을 사신 셈이다.
나는 가끔 그 기름 먹인 책장에 스며있는 어머니의 내간 필체가 궁금하고, 또 그 옛날의 책의 운치가 그리워 그들을 꺼내보곤 했다.
어머니의 반닫이 3층장은 오동나무 재질이다. 아버지의 강원도책반닫이의 투박한 침묵보다 날렵하면서도 정다운 면이 있다. 외면도 붉은 주칠이 아니고 여러 번 옻칠을 한 검정색이어서 단정하다. 지금의 옷장들과 달리 옷의 모양을 살리면서도 보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형적인 일인용 궤였다.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그 강원도책반닫이와 어머니의 3층장은 어디로 갔는지, 새로 집을 지어 사는 고향집엔 그것들의 흔적이 없다. 지나간 세월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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