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꽃씨를 받으며

권영상 2014. 10. 6. 12:42

꽃씨를 받으며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창문을 연다. 눈 부신 햇빛과 파란 하늘이 보고 싶어서다. 오늘도 여전히 티 한 점없이 하늘이 푸르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마치고, 텃밭에 나가 순무잎을 갉는 깜장 벌레를 잡고, 바짝 마른 대파밭에 슬렁슬렁 호미질을 좀 해준다. 놀라운 것은 추분이 지나면서부터 밭에 풀이 나지 않는다는 일이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풀들도 그 무렵부터 기운이 한풀 꺾인 모양이다. 풀이 안 나니 그야말로 할 일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지붕을 타던 나팔꽃 덩굴에 동글동글 꽃씨가 익는다. 다갈색 꽃씨주머니를 터뜨린다. 까만 나팔꽃씨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온다. 보나마다 꽃씨가 큰 건 흰줄무늬 보라색 나팔꽃이고, 작은 건 풀나팔꽃이다. 나팔꽃 꽃씨주머니가 많다. 나는 꽃씨를 손바닥으로 받아 들깻잎에 싸고 바랭이 풀줄기로 둘둘 감아 묶는다.

밭 가생이에 심어놓은 빨간 분꽃에도 꽃씨가 익었다. 염소똥마냥 까맣고 통통하다. 한 톨 한 톨 또록또록한 분꽃씨를 받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 분꽃씨 안에는 제 어미가 넘겨준 유전자들이 모두 들어있겠다. 요 작은 씨앗 속에 그런 오묘한 자연 원리가 숨어있다는 걸 생각한다. 흙 묻은 내 손바닥 위에 큰 우주가 있다. 신비롭다.

 

 

 

한 걸음 한 걸음 집 울타리를 돌아본다. 쪽 심어놓은 맨드라미는 여전히 아직도 붉다. 맨드라미꽃 목덜미를 긁자, 반짝이는 씨앗이 손바닥에 오소소 떨어진다. 울타리를 빙 둘러 심어놓은 해바라기도 꽃 진 지 오래다. 그 동안 박새, 곤줄박이란 놈들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날아와 해바라기 씨앗을 다 까먹었다. 그래도 요기조기 남겨놓은 씨앗이 있다. 그게 이제야 내 차지가 된다. 청도라지 씨앗도 털어 받고, 프렌치 메리골드며 작약 씨앗도 받는다. 모두 지난 계절을 빛낸 꽃들이다.

 

 

 

그들을 모두 살펴보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보리수나무 둘레에 심어놓은 채송화 앞에 섰다. 철이 지났는데도 띄엄띄엄 쉬지 않고 핀다. 노랑과 하양과 다홍 꽃잎이 곱다. 채송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숙인다. 꽃가지 끝끝마다 씨앗을 물고 있는 꽃씨주머니가 있다. 콕 누른다. 먼지보다 작은 씨앗들이 손가락 끝 지문 사이사이에 끼인다. 회색빛이거나 은빛나는 이 작고 소중한 생명들. 나도 모르게 채송화 꽃 씨앗을 들여다 보며 비명 같은 탄성을 지른다. 이 작은 씨앗 속에 풀벌레 소리며, 여름날의 폭염이며, 가을밤의 맑은 별빛이 모두 숨어 있겠다. 오묘하고도 신비하다.

 

 

 

꽃씨를 받는 순간만큼은 내 몸이 선해진다. 올 한 해 동안 지은 죄와 욕망이 씻겨나는 듯하다.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 투명해진다. 이들 반짝이는 꽃씨 앞에서 어떻게 순수한 목숨 이외의 다른 진부한 욕망과 탐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대지를 향해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몸이 가뿐하다. 대지만큼 사람을 편케 안아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이 뜰안에 묻힌 꽃씨를 깨워낸 것도 대지이며, 그것들이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대지이다. 나는 오늘 키 작은 채송화 덕분에 대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생각해 보니 살아오며 누구를 위해 무릎을 꿇어본 적도 오래다. 어린 시절, 농사꾼이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려본 이후로 오늘이 처음이다.

 

 

 

첫 한 번이 어렵지 키 낮은 채송화를 보고나자, 내 눈이 자꾸 낮은 데로 간다. 돌틈 사이 늦게 핀 제비꽃이 이제야 씨를 물고 있다. 누가 떨어뜨린 건지 여태 본 적 없는 부추가 잔디들 사이에서 씨를 여물리고 있다. 민들레꽃을 닮은 키 큰 사데꽃도 하얀 꽃씨솜을 잔뜩 물고 있다.

목숨들은 모두 이 세상에 자손을 남긴다. 꽃들 또한 그들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가을볕을 싫도록 누린다. 요즘 풀밭이든 배추밭이든 흔하게 보이는 게 교미중에 있는 섬서구메뚜기들이다. 가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자신을 닮은 종을 세상에 반드시 남기고 가려는, 그 성스러운 본능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내 눈에 바라보이는 대지 위의 모든 자연은 지금 성실하다.

 

 

 

한낮인데도 풀섶에서 찌이이찌이이, 풀벌레가 운다. 이제 그들에겐 밤 시간만으로는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말은 없지만 이 뜰안에서 한 철을 마감하는 꽃들도 씨앗을 익히기엔 낮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생명들은 모두 봄을 내다보며 올 한 해를 부지런히 살았다. 꽃씨를 받는 일 또한 훗날에 다가올 고운 봄을 기약하는 것이다. 내 안에 먼 봄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