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그늘에서 우체통을 만들다
권영상
나무판자 두 쪽을 구했다. 우체통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안성에 집을 마련해 놓고 산 지 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체통이 없다. 정확히 우편물 수취함이 없다. 백암 철물가게를 지날 때 매장에 빨간 우체통이 있는 걸 보았다. 그러면서도 철물가게에 들를 때마다 우체통 구할 생각을 못했다.
근데 어제였다. 서울시 청사 지하에 ‘의자 전시’가 있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백여 년 된 의자들도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현대식 의자들도 나왔다. 그 중에 투박한 긴 등의자도 나왔다. 의자의 바닥은 두꺼운 통짜 나무판이다. 의자의 앞 다리는 손으로 울퉁불퉁 개다리 모양으로 깎았고, 뒷다리는 네모 각목인데 등받이 판을 지탱하고 있었다. 투박미가 철철 넘치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막치기 의자였다. 그렇게 험한 눈으로 보아놓고 또 다시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만든 사람의 절제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의자라면 나도 만들겠다.”
괜히 그런 허언을 했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내 머리에 ‘그럼, 우체통부터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없이 허언만 하지 말고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망치로 손이나 찧어 병원 가느니 간편하게 사다가 다는 게 좋을 걸.”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조롱하듯 나를 만류했다.
“그걸 핑계로 병원에 가 좀 쉬어보는 것도 좋지.”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집을 나가 아파트 앞 택배회사에서 어렵지 않게 화물 운송용 판자를 구했다. 판자 두 개를 들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오며 휘파람을 불었다.
“두고 보라구.”
나는 톱과 망치를 주섬주섬 들고 단풍나무 그늘로 나갔다. 나무판자에 우체통 단면도를 그리고, 길이를 정하고, 판자에 금을 그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귓등에 연필을 꽂고 톱질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귓등에 연필을 꽂고 톱질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거나 어쩌면 향수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뭘 만들려고 그러느냐? 나도 톱 한번 잡아보면 안 되겠느냐? 나무판자는 어디서 구했느냐? 얼마 주고 톱을 샀느냐며 모여들었다.
그런데 나무를 다 잘라놓고 보니 못을 안 가지고 내려왔다. 우쭐했던 내가 좀 창피했다. 나는 다시 집에 올라가 못이 든 병을 들고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시멘트 못이거나 판자 두께보다 작은 못들뿐이다. 의기양양하던 내 모습이 점점 주눅들어갔다. 나는 다시 지갑을 들고 나와 골목 철물가게에 가 못을 사들고 돌아왔다.
못을 박고, 빼고 하면서 간신히 우체통을 만들어냈다. 시청 의자 전시장에서 본 등의자에 대면 꼴이 우습고 말고다. 그런데 장석이 없다. 우편물을 꺼내려면 여닫는 문이 필요하다. 못을 사러갈 때까지도 그 생각을 못했다.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집어넣을 편지 투입구만 생각했지, 그걸 내가 꺼낼 일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다시 철물가게에 갈 일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작은 우체통이라고 너무 얕잡아 봤다. 판자 쪽과 망치와 톱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번거롭기 짝이 없다. 한 30분 뚝딱거리면 되겠지 했는데 벌써 한 시간이나 좋이 흘렀다. 나란 본디 이런 사람이다. 어리석다. 아무 생각 없이 불쑥 일을 벌여놓고는 그걸 마칠 줄 몰라 쩔쩔맨다. 망치 들어본 게 언제인가. 그런 내가 의자 전시회에 나온 등받이 의자를 보고 가당찮게 허언을 하다니.
나는 손을 놓고 단풍나무 그늘을 나섰다. 가을볕을 따라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감이 익고, 대추가 익고, 구상나무에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들떠있던 내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남의 과업을 얕보던 마음도, 덤벙대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늘 하던 일이 아니면 누구나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실수를 겁내지 않고 우체통을 만들어보겠다는 내가 어찌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다시 단풍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만들다 놓은 우체통이 괜찮아 보인다. 아까까지만도 이게 우체통 구실을 할까 했는데, 엄두를 내기 잘 했다.
“좀 어설퍼도 내 손으로 의자를 만들고, 식탁을 만들어 쓰는 일이 행복이지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목수 일을 제대로 배운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바보처럼 몇 번이나 철물가게에 다녀오고, 몇 번이나 집안을 들락인 건 솔직히 나의 불찰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내가 또한 고맙다.
장석을 사러 철물가게로 향한다.
이 번거로움을 이겨내는 나의 인내심이 즐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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