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가을은 교미의 계절

권영상 2014. 9. 18. 10:23

 가을은 교미의 계절

권영상

 

 

 

 

 

곤충들에게 있어 가을은 교미의 계절이다. 
마당 잔디밭에 잠시만 나와보면 교미 중에 있는 곤충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이들은 녹색 숲에 교묘히 몸을 숨기고 은밀한 일을 치른다. 주로 방아깨비, 풀메뚜기, 풀무치 등이다. 

 


이들의 체위는 단순하다. 든든하고 큼직한 체격의 암컷 위에 작고 왜소한 수컷이 올라탄다. 얼핏 보아 등에 업고 장난을 치고 있는지 모를 만큼 암수의 체격 차이가 현저하다. 교미 시간도 그리 짧지 않다. 그것은 이들의 동정 포인트identification point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컷의 생식기 끝에 있는 갈고리가 암컷의 성기에 꼭 물리게 하는, 이를테면 같은 종족끼리만 교미를 가능하게 하는 특성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통에 생긴 음식물 찌꺼기를 묻으러 집 옆 텃밭에 갔다. 거름도 할 겸 쓰레기 배출량도 줄여볼 생각에서다. 그걸 묻고 일어서려는데 콩포기 콩잎에 갈색 노린재들이 눈에 띈다. 콩이 익어가는 콩포기에 숨어 지금 교미 중에 있다. 세 마리다. 처음엔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수컷이 달려들었다. 그 녀석이 교미 중인 수컷의 어깨를 그러잡고 망측하게 끌어내린다. 그렇다고 교미 중에 있는 수컷이 순순히 암컷을 넘겨줄 리 없다. 그는 지금 중대하고도 아주 중대한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의 몸에 남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그 일을 쉽게 포기할 수컷이 어디 있겠는가.

 


끌어내리려는 수컷과 암컷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수컷의 치열한 싸움. 웬만하면 암컷이 교미 중에 있는 수컷을 도와줄 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암컷 노린재는 앙큼하다. 도와주기는커녕 두 수컷의 싸움박질을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드디어 새로 나타난 강적의 힘에 교미 중에 있던 수컷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몇 번이고 강적에게 덤벼들더니 그만 슬그머니 물러선다. 이윽고 싸움에 이긴 수컷이 암컷 몸에 달라붙는다. 언제 그랬냐 싶게 암컷이 새로운 수컷을 앙큼하게 받아들여 교미에 돌입한다. 그걸 지켜보던 수컷이 다시 덤벼든다. 그러나 상대는 꿈쩍도 않는다. 몇 번인가 더 도전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나도 일어섰다. 빈 그릇과 호미를 챙겨들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마당가 단풍나무 마른 가지 끝에 이번에는 교미 중인 왕잠자리가 앉아 있다. 이들의 교미 체형은 아름답다. 수컷은 다이나믹하게 꽁지를 위로 올려 암컷의 뒷덜미를 잡고, 암컷은 몸을 안으로 구부려 꽁지 끝을 배에 위치한 수컷의 생식기에 삽입하여 정자를 받는다. 유연하고도 우아한 교미 체위다. 

 


더욱 신비한 것은 머리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교미를 하면서도 날아다닐 수 있는 일이 가능해진다. 하긴 이들 잠자리는 백악기 때부터 지금까지 탁월하게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곤충이다. 그렇고 보면 교미 체형도 세상 그 어떤 종보다 세련되고도 모던하게 진화해왔을 것은 자명하다.
한 발짝 다가가자, 훌쩍 날아오른다. 교미를 하면서도 태연히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다니!      

 

(교차로 신문 2013.9.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