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던 서울의 지난 8월 10일
권영상
8월 10일.
아침 창 밖을 보니 장맛비 내리는 바깥 풍경이 야릇하다. 비야 장마니까 늘 보던 그 장맛비다. 그런데 장맛비 내리는 풍경이 음산하다. 우선 아침 시간이 컴컴하도록 어둡고, 연소되지 않고 배출되는 연기처럼 마당 공기가 검푸르다. 나는 음울한 창밖을 다시 내다본다. 이삿짐차 두 대가 14층 집 짐을 내리느라 고가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또 한 대는 8층 집에 걸쳐져 있다.
“그 차들이 내뿜는 매연인가 보구만.”
아내가 빠른 짐작으로 그런다.
“장마 중이라 매연이 아파트를 빠져나가지 못하나봐.”
나는 또 어리숙하게 바깥 풍경을 이해하려 했다.
비가 뜸하다. 아침비는 기세 좋게 내리다가도 이내 그친다. 나는 곧장 산으로 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마당이 온통 검푸른 대기 물질로 가득 찼다. 이삿짐차 두 대가 매연을 내뿜는 건 분명 아니다. 아파트 마당을 나서서 느티나무 오솔길로 들어서자, 불길한 예감이 와락 달려들었다. 검푸른 대기 물질이 시야를 꽉 틀어막았다. 순간 나는 돌아섰다. 이대로 공기에 노출됐다가는 호흡기관이 다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산으로 들어섰다. 평소에도 공기가 안 좋던 숲 속 길이 마치 어둠에 침몰한 공포의 빛깔처럼 검푸레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게 있었다.
지구의 종말! 오만가지 지구 오염과 자장력과 중력의 파괴로 아수라장이 되는 영화 속의 종말. 그와 유사한 이 공포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뭔가. 없다. 천천히 이 두려운 현실과 맞닥뜨려 보는 길밖에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한가로운 여유가 지금 내게는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겠다는 건, 그건 참으로 할 일 없는 내일의 이야기다. ‘내일 지구가 종말한다면’이 아니라 ‘이미 종말하고 있는’ 그런 풍경이다.
숲 속 나무들 우듬지까지 검푸른 물질이 차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울지 않는다. 새들 울음소리도 없다. 나뭇잎 한 장 흔들리지 않는다. 컴컴한 하늘에선 쉴 새 없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산 아래 남부순환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모습이 마치 서울을 탈출하려는 행렬 같아 보인다.
어디선가 지표의 약한 부분을 뚫고 지구가 폭발할 것 같다. 불현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길한 기사가 떠오른다. 지구 종말을 암시한 마야 달력이 떠오른다.
산 정상에 오르도록 인적이 없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른 산들도 목 밑까지 대기오염으로 가득 차올랐다. 도심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검푸른 오염원에 침몰해 있다. 지구 종말 이후의 새로운 지구는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문득 불순한 생각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쉴 새 없이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친다. 목 안을 파고드는 검푸른 물질이 곧 기도를 틀어막을 것 같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비상벨이 요란히 운다. 합선이 된 모양이다. 사람들 몇이 바삐 움직인다. 새로이 태어나는 지구는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그때도 여전히 오늘 이 모습 이대로일까.
(교차로신문 2013년 8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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