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독립영화 “달팽이의 별”의 소박한 삶의 경이로움

권영상 2014. 8. 14. 11:00

 

독립영화 “달팽이의 별”의 소박한 삶의 경이로움 

권영상

 

 

 

 

 

“이게 소나무예요. 한번 만나봐요.”
그의 아내는 남편을 소나무 앞에 세운다. 
소나무가 궁금했던 영찬은 떨리는 마음으로 소나무에 손을 댄다. 그리고는 시를 읽듯 예민한 손가락으로 소나무를 꼼꼼히 읽어간다. 지구별에 처음 온 우주인처럼 그의 손끝은 이 새로운 대상이 놀랍기만 하다. 그 놀라움 때문에 그는 연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신이 생각했던 소나무에 대한 의구심과 낯설음 때문이다. 영찬은 두 손을 벌려 소나무를 안아본다. 그의 표정이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찬다. 

 

 

“네가 소나무라고?”
영찬이 나무에게 속삭이듯 묻는다. 
등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키 작은 척추장애의 착한 아내가 영찬의 손가락 위에 ‘지금 뭐하고 있어?’ 하고 글씨를 만들어 두드린다. 
“나무와 이야기하고 있어.”
영찬이 들킨 듯 부끄럽게 대답한다. 

 

 


 

젊은 시청각 장애인인 영찬.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어눌하게나마 말은 하는, 촉각에 의지하는 사내. 그는 우리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물도 만날 때마다 경이로워한다. 아내가 주워온 솔방울을 손바닥에 받아들 때도 그렇다. 솔방울이 다칠까봐 손끝으로 가만가만 더듬어 보고, 코로 냄새 맡아보고, 무게를 가늠한다. 그에게 있어 만남이란 그토록 진지하다. 끝내 솔방울을 던져본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몇 번이나 방향 설정을 한 뒤 어린아이처럼 던진다. 시야가 막힌 그에게 있어 어떤 사물을 원하는 방향으로 던져보내는 일은 두렵다. 그러나 세 개의 솔방울을 던져본 뒤 그는 그 일에 재미와 행복을 느낀다. 

 

 

 

“나는 우주인이나 마찬가지야.”
영찬에게 있어 새롭게 만나는 대상들은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이 그렇듯 신비롭다. 턱없이 키가 작고, 눈도 귀도 먼 그들 부부에겐 천장에 매달린 원형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일이 고난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끝에 간신히 형광등을 갈아끼운다. 그 일을 마쳤을 때 그들은 기쁨에 젖어 포옹한다. 우리에게 별 볼 일 없는 일도 그들에겐 따스한 행복이 된다. 
‘별을 본 적은 없지만 밤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나는 한 번도 의심해본 일이 없어.’
영찬은 바닷가 모래톱에 밀려오는 파도 한 줌을 처음으로 만져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2012년 3월에 개봉된,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승준 감독의 독립영화 “달팽이의 별”이다. 
나는 소박한 나의 삶에 대해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간 남의 외제차나, 고급아파트나, 골프 회원권이나 넘겨다 보며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삶을 부러워만 했지 별 볼 일 없는 듯한 나의 삶을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 “달팽이의 별”을 보는 내내 소박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시 배운다. 내가 만나는 ‘이 지금’을 나는 오늘부터 사랑해야겠다.

 

(교차로신문 2013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