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공짜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권영상 2014. 6. 16. 14:00

공짜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권영상

 

 

 

 

부채 하나를 받았다. 시청에서 광화문 가는 길에서다. 젊은이들이 동그란 모양에 자루가 긴 부채를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때가 때니만큼 얼른 받았다. 벌써 한여름 날씨다. 부채를 받아쥐고 설설설 부채질을 하며 가다가 문득 손에 든 부채를 본다. 먼 남쪽,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피서를 와 달라는 광고용이다. 나는 부채를 버리지 않고 집까지 데리고 왔다.

 

 


예전에는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났다. 부채 하나로 났다면 솔직한 말은 아니다.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려면 마을 앞 정자나무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집집마다 호두나무나 오동나무 그늘이 있어야 한다. 더우면 그 그늘에 들어가 멍석 위에 벌렁 누웠다. 모시나 삼베옷 차림으로 목침을 베고 눕는다면 금상첨화.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허벅지에 떡 걸치고 누워 설설설 부채질을 하거나 서늘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예전엔 더위를 식혔다.

 

 

 


해 지면 오랍들 채소밭에서 방금 딴 오이로 오이냉국을 먹거나, 그도 성에 안 차면 웃옷을 벗고 펌프 물에 등목을 했다. 한껏 추켜올린 엉덩이쯤에 펌프 물을 끼얹으면 물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목덜미를 내리친다. 그때 찬물에 흐느끼던 비명소리가 그나마 진종일 지친 몸을 식혀주곤 했다.

예전엔 초가집에도 대청마루나 툇마루가 있었다. 밤이면 웃옷을 벗고 앉아 마당에서 뭉깃뭉깃 밀려오는 모깃불 연기를 쐬었다. 생풀연기에 취해 비스듬히 누우면 집앞 무논에선 개걸개걸개걸 개구리들이 밤을 새워 울었다. 꽥꽥, 악악, 개구락개구락, 개똥개똥개똥..... 개구리 울음을 들을 때도 이슥한 밤의 부채바람은 필요했다.


 

 

 

고향엔 물이 많아 더우면 갯물에 몸을 담그러 갔다. 갈대가 우거진 으슥한 숲에 들어가 철벙철벙 더운 몸을 식혔다.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아 볼것 조차 없는 몸인데도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웅크리며 씻던 그런 부끄러움도 여름 더위를 식히는데 일조를 했다.

 

 


 

그런데 그 부채 하나로 요즘도 여름을 날 수 있을까?
우리에겐 그 옛날의 초가집도 없고, 오동나무 그늘도 없고, 땅속에서 길어올리던 펌프 물도, 툇마루도, 밤새워 울어주던 개구리 울음이며 반딧불이, 그리고 갈숲 뒤에 숨은 갯물도 없다.
있다면 하루 종일 폭염에 노출되어 펄펄 끓는 아파트와 포장된 자동찻길과 오염된 공기와 바람과 자동차 소음들. 그 속에서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선풍기 앞에서 여름을 나던 일도 이젠 옛일이다. 가정이나 학교나 쇼핑샵이나 모두 에어컨 바람에 길들여져 있다. 에어컨보다 더 강력하고 값비싼 냉방제품이 나온다면 사람들은 또 그것에 열광할 것이다. 이미 소비와 욕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서늘한 바람을 돈으로 구매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먹을 물도 구매하고, 청정 공기도 구매하는 시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무그늘이나 모깃불 연기, 그리고 등목은 이제 시시해졌다. 오직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만이 우리를 시원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그러니 공짜로 받은 부채가 우리를 시원하게 해 준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 수 없겠다.

(교차로신문 2013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