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부를 벗어버린 류드밀라 푸틴
권영상
“푸틴 러시아 대통령 부부 끝내 파경”이라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 이혼 이야기에 뭔 관심이 있겠습니까만 기사를 읽고 나니 가슴에 남는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혼은 여느 이혼하고 좀 다르네요. 젊은 체조 선수와의 뒷소문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사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들 부부는 크렘린궁에서 열린 발레 공연 ‘에스메란다’를 관람한 뒤 30년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의 이혼 모습을 멋있다고 말하긴 그렇습니다만 분명 좀 다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당사자 간의 법정투쟁이나 ‘네 탓’식의 흠집내기 설전이 있기 마련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추문이 없네요.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습니다.
류드밀라 푸틴 여사의 “대중 앞에 서는 게 싫었다.”는 이혼 이유입니다. 푸틴은 13년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정치인입니다. 그런 정치인의 아내가 대중 앞에 서는 게 싫다니! 솔직히 처음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도 정치인의 아내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사회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타인들과 부대끼며 사는 걸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 말은 우리가 고전처럼 오랫동안 익혀온 말입니다.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속한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이 말을 제가 어떤 힘으로 거역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은 당연히 싫건 좋건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올바른 시민, 또는 성숙한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사회가 만든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일이 인간의 성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보다는 만들어진 법과 질서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지 성숙이나 올바름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류드밀라 푸틴 여사는 대중 앞에 나서는 사회적 활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분 같습니다. 다시 말해 화가 나도 대중 앞에서는 웃어야 하고, 개인적인 삶보다 사회적인 삶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하는 일상들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13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 동안의 그런 삶은 어쩌면 그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순간, 독일의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좀머씨 이야기> 속의 좀머씨의 몸부림 섞인 비명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권력을 움켜쥐고 싶어하고, 명예와 부를 누리고 싶어하고, 남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싶어합니다. 푸틴 곁에만 있어준다면 류드밀라 푸틴 여사는 그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그 세속적인 행복을 벗어버렸습니다. 그 점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교차로신문 2013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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