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좋은 경험

권영상 2014. 4. 14. 08:53

좋은 경험

권영상

 

 

 

 

 

 

매형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다행히 차도가 좋아 집에서 몸조리를 하신다.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그 동안 매형도 병원 생활에 지치셨을 거고, 간병을 한 누님도 힘드셨겠다.
나는 누님이 사시는 댁으로 가며 전화를 드렸다. 밖에 나가 점심 식사라도 하자고. 내 말에 누님이 ‘알았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칼국수가 좋을까, 담백한 설렁탕이 좋을까. 나는 내 식성대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누님 댁에 들어섰다. 그런데 누님이 음식준비에 한창이다.


 

 

“퇴직하고 혼자 밥 챙겨먹는 네가 걱정돼 추어탕 끓이고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얼굴 들 면목이 없었다. 나는 퇴원한 매형에게 담백한 칼국수니 설렁탕이니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누님은 멀쩡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누님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위다. 막내인 나는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려도 어린 시절 누님을 막 대했다. 그런데 차츰 나이를 먹으며 느낀 것이 누님한테서 가끔 어머니를 본다는 점이다.
어떻든 뜻밖에도 누님이 차려주신 추어탕으로 점심을 잘 먹었다. 그러고 나오려는데 식구들과 먹으라며 추어탕 한 그릇을 단단한 용기에 담아 주신다. 나는 몇 번이나 사양했다. 그런다고 물러설 누님이 아니다. 누님은 결국 종이가방에 그걸 담아 안고 버스 타는 데까지 따라와 나를 태워주셨다.

 

 


누님과 작별하고 버스에 올랐다. 마침 앞쪽에 자리가 생겨 요행히 앉았다. 버스가 떠나고 전철역 근방에서 내릴 쯤 나는 내려놓은 종이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뿔싸! 종이가방이 뜨거운 추어탕 열기에 밑이 약해진 모양이다. 가방 밑이 터지면서 추어탕 그릇이 툭 떨어졌다. 추어탕 한 그릇만 넣는다 했는데 파김치며 도토리묵 봉지가 쑥 빠져나왔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그것들을 주섬주섬 밑 터진 종이가방에 되는 대로 담아 의자에 주저앉았다.

뒤쪽에 앉은 젊은 처녀들이며, 아주머니들이 다 보았을 걸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까. 나는 누님을 탓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안고 있는 추어탕 때문인지 무릎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렇다고 밑 터진 가방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쳤다. 다가온 여자 분의 손이 검정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 종이가방을 통째 비닐봉투 속에 밀어 넣고는 의자 밑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숨죽여 창밖만 내다보았다.
버스가 한 정거장을 그렇게 더 가고, 나는 쫓기듯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는 대로 가게에 들러 큼직한 종이가방부터 샀다. 전철을 갈아타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그분을 생각했다. 내게 검정 비닐봉투를 말없이 건네주던 그분은 어떤 분일까. 얼핏 어깨 너머로 본 그분의 손은 마디가 굵었고, 귀밑 머리칼은 부스스했다. 예전의 내 어머니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왜 나는 그때 고맙다는 말도 못 해 드렸는지…….

 

 

집에 돌아오는 대로 누님께 전화로 그 이야기를 했다.

다 듣고 난 누님이 ‘좋은 경험을 했구나!’ 그러신다. 그런 그 목소리가 또 예전의 어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닮았다.

 

 

(교차로 신문 2013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