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외로워 못 살아요

권영상 2014. 4. 14. 08:43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외로워 못 살아요

권영상

 

 

 

 “수정이 아버지, 안녕하세요?”
전에 살던 집 아래층 사람을 서점에서 나오다 만났다. 백화점에서 나오던 그이도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이는 1층에, 나는 3층에 살았다. 5,6년을 살았다. 나는 그를 잘 기억한다. 그는 해마다 승용차를 신종으로 바꾸었다. 그래서는 가족들과 주말이면 야외로 나갔다. 아빠가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런 거지요, 그때 그는 그랬다. 가족들에겐 그렇게 철저하면서도 이웃 사람들과는 종종 싸웠다. “너 몇 학번이야!” 이게 그 사람의 주특기였다. 마당에서 울려오는 그 싸움소리를 들으면 나는 아찔했다. 상대방이 혹 대학을 못 나온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게 걱정스러웠다.

 

 


그는 경기도 어디에 아버지가 운영한다는 회사에 다녔다. 그래선지 나는 전세로 살았고 젊은 그는 저의 집이었다. 사는 모습이 우리와 달랐다. 월급쟁이인 나는 그의 그런 넉넉함이 때론 부럽기도 했다.
“요샌 벤츠 몰고 컨트리 클럽 나가는 재미로 살아요.”
지하 분수대 곁에 앉자마자, 그가 그 말을 꺼냈다. 그는 경제적인 게 뒷받침 되니까 그런 곳에 가고도 남겠다. 외제차도 모르고, 골프도 모르는 나는 그런 이야기보다 그때 그이와 함께 마당 청소를 하고, 향나무 전지를 하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날 보더니 그가 머쓱해 하며 일어섰다.

 

 


“저,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외로워 못 살아요.”그 말을 남겨두고 떠나갔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키는 나보다 작지만 몸은 컸다. 그런데도 왠지 그의 뒷모습이 작게 보였다. 그가 뭣 때문에 외로워하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안다. 그는 늘 과시하며 살았다. 12년 전 그때에도 고급차를 몰고 골프를 치러다녔다. 그래선지 그를 미워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았다. 남도 남이지만 그의 중학생인 딸과 아들한테도 미움을 받았다. 자신은 해마다 신형차를 사 멋진 아빠 소리를 듣는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조차 과시하는 아빠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면 그렇겠다.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 해도 속은 여전히 허전하고 외로울 게 틀림없다.


 

 

도시를 사는 사람치고 허전하고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는 일 자체가 외롭고 허전한 게 아닌가.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외제승용차를 몰고, 유명 브랜드 핸드백을 들고, 하의가 실종된 긴 다리를 과시해 보지만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거리를 다닌다고 허전한 구석이 메워지지 않는다.


 

 

나는 요즘 이런 젊은이들이 좋다.
버스 한 정거장쯤에서 내려 직장까지 걸어다니는 젊은이들이 좋다. 온 세상 남자들이 얼굴화장을 한다 해도 그 일에 개의치 않고 맨 얼굴에 자신을 갖는 젊은이가 좋다. 테이크아웃 커피나 긴 다리를 과시하는 일보다 자기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젊은이가 아름답다. 그의 가방 속에는 화장품 대신 즐겨 읽는 책이 한두 권..... 그렇게 사는 젊은이들은 인생이 허전할 수 없다. 과시는 더욱 허전한 과시를 낳을 뿐이다.

 

(교차로 신문 2013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