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사람보다 낫지
권영상
이사철이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이삿짐차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아파트에도 동마다 이삿짐차가 매달려 짐을 올리고 내린다. 눈 녹고 꽃샘바람 불기 시작하면 학구를 따라, 바뀐 직장을 따라 짐을 싸고 푸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내 집을 가졌다 해도 직장이 먼데로 바뀌면 옮겨야 한다.
내 집이 없는 사람들은 해마다 3월이면 이사 걱정이다. 전세 비용도 만만찮게 오른다. 그러니 일 해야할 젊은이들이 자꾸 먼 외곽으로 살던 터전을 옮긴다.
이삿짐 차가 뻗쳐올린 사다리 밑을 흘끔흘끔 지나 동네 산으로 간다. 산도 3월답게 봄이 가까이 온 느낌이다. 춥다싶은 아침인데도 땅이 질다. 그 많던 눈도 다 녹았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듯 하던 겨울도 이렇게 가버렸다. 좁은 참나무 길을 지나며 보니 생강나무 가지 끝끝이 통통하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노란 꽃맹아리가 부풀었다. 층층나무도 그렇고, 오리나무도 우듬지에 물이 잔뜩 올라 붉다.
산중턱에서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나무벤치에 앉아 쉴 때다. 마른 칡덩굴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가만 보려니 까치다. 까치가 마른 나뭇가지 하날 주둥이 끝에 물고 마치 무게를 가늠하듯 가지를 툭툭 던져올린다. 그러더니 그걸 물고 훌쩍 날아오른다. 내 눈길도 까치가 가는 방향을 따라갔다. 이쪽 꽤 큰 아카시나무 위에 내려선다. 나무 우듬지 갈라진 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있다. 쌓아올린 나뭇가지가 서른 개쯤 되겠다. 기초공사 중이다. 물어간 나뭇가지를 둥지에 내려놓자, 둥지에서 기다리던 또 한 녀석이 그걸 적당한 자리에 놓는다. 부부인 모양이다. 나는 그들 부부까치가 하는 양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나뭇가지 하나 물어다 놓고는 그 윗가지에 올라가 딴청을 부리듯 논다. 둘 다 그런다. 그러다간 훌쩍 날아오른다. 나뭇가지를 구하러 가나보다 했는데 아니다. 집 짓는 일을 깜빡 잊었다는 듯이 바람을 타며 아주 여유만만이 논다.
내가 저들이 집 짓는 걸 본 게 일주일은 됐다. 그때는 나뭇가지도 몇 개 없었다. 잘 보아야 보일 정도였다. 그들이 물어올린 나뭇가지 개수도 기껏 셀 정도였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또 저렇게 논다. 언제 집을 다 지어 새끼를 칠 모양인지 내 눈으로 보기에 부지하세월이다. 마치 날 보란 듯 저렇게 춤만 추며 허공을 난다.
거기에 비하면 사람은 어떤가. 까치만도 못하다. 제 살 집을 제 손으로 못 짓는다. 기껏 누군가 지어놓은 집에 가 사는데도 성미가 급하다. 이사를 하려면 들어가려는 집과 나오는 집의 날짜가 맞아야 한다. 그래야 돈을 빼고 넣을 수 있다. 그러느라 모르는 사람간에 실랑이가 생기고 언성이 높아진다. 그 일을 십여 차례나 했다. 대체 사람은 언제나 제 몸에 맞는 집 하나 지어놓고 이사철 없이 여유있게 살 수 있을까. 집 하나 구하는 일에 인생을 다 바치는 우리네 삶이 까치 보기에 참 부끄럽다.
“까쳉이가 사람보다 낫지.”
예전 아버지는 그러셨다. 다른 건 몰라도 집에 관해서는 그 말씀이 맞다. 부부가 제 손으로 여유롭게 집 짓고, 거기 들어 자식 낳고, 이사철 걱정없이 춤추듯 바람을 타며 사는 일은 분명 사람보다 낫다. 그런 일을 배우고 싶다.
(교차로신문 2013년 3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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