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미스코리아’, 그 가사속에 담긴 우수
권영상
미혼 여성들이 지쳐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 정점에서 가수 이효리씨가 신곡 ‘미스코리아’를 발표했다. 발표하자마자 국내 음원차트마다 1위를 석권하고 있단다. 노래도 노래지만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우리 시대 미혼 여성들이 안고 있는 아픔을 명료하게 적시하고 있다. 가사만 보아도 20대 여성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일그러진 사회 속에서 눈물겹게 살고 있는지를 한눈에 읽어낼 수 있다.
“유리 거울 속 저 예쁜 아가씨
무슨 일 있나요. 지쳐 보여요.”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예쁜 아가씨’는 지쳐있다. 고치고 또 고쳐놓은 얼굴도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나의 얼굴이 아니다. 잘 나가는 탤런트나 가수나 영화배우의 이미지를 조합한 얼굴이다. 가슴을 풍만하게 부풀려 올리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코를 높였지만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자본주의와 대결하여 내가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서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때 나는 당당해진다. 잊고 살았던 내 얼굴을 되찾을 수 있고, 남의 욕망에 휘둘리며 살던 나를 건져낼 수 있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몰개성의 보편주의와 결별할 수 있다.
I'm a Miss Korea.
다 똑같이 코를 세우고, 다 똑같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다 똑같이 늘씬하게 가꾼 몸은 이미 개성 없는 기성품이다. 다 똑같이 손에 든 공짜폰도 이미 기성품이고, 야구 경기에 열광하는 관중들 속의 나도 기성품이다. 그 자리에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열에서 벗어날 때 나는 당당한 Miss Korea가 된다.
명품 가방 하나 구하려고, 명품 가방 가게에서 6개월을 보수 없이 일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누가 우리를 명품에 살고 명품에 죽게 만들까. 그러나 명품 하나 들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일이 아니다. 내가 그걸 차지했을 때 내 손에 들린 명품은 이미 명품이 아니다. 명품은 더 값비싼 명품으로 저 먼 곳에서 무지개처럼 나를 또 유혹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명품이라는 허상을 허겁지겁 따라가다 언제쯤 자신도 모르게 파산하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명품을 쫓아간다. 왜일까? 누군가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고 있는 명품 가방으로, 내가 입고 있는 명품 옷으로, 곧고 늘씬한 다리로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이런 시선을 의식하며 사느라 예전보다 더 많이 땀 흘려 일하지만 우리의 지갑은 갈수록 가난하다.
이 가사를 읽노라면 꿈과 부를 쫓느라 허덕이는 우리 사회의 그늘을 보는 듯해 왠지 쓸쓸하다. 직업도 불안하고, 그래서 결혼도 포기하고, 꿈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아가씨’들에게 가수 이효리씨는 ‘신기루’ 같은 또 한 사람의 우상이다. 그 우상이 진정 팬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이 노래, ‘미스코리아’가 상처받은 ‘아가씨’들의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당신이 최고야!
(교차로신문 2013년 5월 16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예와 부를 벗어버린 류드밀라 푸틴 (0) | 2014.05.24 |
---|---|
성공을 외칠수록 젊은이들은 피로하다 (0) | 2014.05.11 |
좋은 경험 (0) | 2014.04.14 |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외로워 못 살아요 (0) | 2014.04.14 |
꽃향기는 바람이 불어야 멀리 간다 (0) | 201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