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지워져 가는 사랑
권영상
우면산에 오를 때면 나는 그길 앞에서 잠시 멈춘다. 산 중턱 늙은 오리나무 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이다. 지난해 가을만 해도 가랑잎으로 덮인 그 길엔 분명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다. 밤 사이 아무리 많은 낙엽이 떨어져 쌓였다 해도 나는 그 길 끝에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알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너머 산비탈 참호에 한 여자가 살았다. 내가 산을 오를 적이면 그녀는 가끔 그 너머에서 홀로 걸어 나오다가 이쪽의 인기척에 멈춤 서 있곤 했다. 그 오솔길은 그러니까 그녀가 내었다.
그런데 그 너머엔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다. 길을 보면 안다. 바람 많은 비탈엔 그녀가 낸 발자국 길이 아직도 뚜렷이 보이지만 이쪽 우묵한 데는 내려쌓인 가랑잎으로 길의 흔적을 전혀 알 수 없다. 사람이 하루에 한 번씩을 다닌대도 가랑잎 위엔 밟힌 흔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흔적조차 없다. 그 길을 아는 나나 ‘예전에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지’ 하며 그 옛날의 길을 떠올릴 뿐이다.
그러니까 길은 조용한 발걸음으로 만들어지고 또 뜸한 시간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한 걸음씩이라도 발걸음을 해주었을 때 길은 유지된다. 그런데 그 한걸음마저 끊기고 나면 길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득히 지워지고 만다. 바람과 비와 눈과 가랑잎과 잔인한 시간에 묻혀 지워지는 그 길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내 인생 속에도 그런 길이 있다.
한 때 내가 만들어놓고 행복하게 다니던, 풀꽃으로 향기롭던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서면 내 마음은 달떴고, 그 달뜨던 마음으로 나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았다. 나는 온통 그 길만을 생각했고, 그 길이 내뿜는 힘으로 나를 버텨냈다. 그 길 끝에는 그림이 있었다.
나는 그때 크레파스화를 배웠다.
내가 살고 있던 하숙집에서 10분을 걸어나오면 화실이 있었다. 그 화실에서 크레파스화를 배우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시간을 채우면 빨리 돌아가야할 먼 곳에 살았고, 나는 나를 재촉할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
는 하숙생이었다.
그때 내게 크레파스화를 가르쳐준 이는 여자였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그림을 공부한, 대학생 미전에서 괜찮은 상까지 받은 젊은 여자였다.
“퍼머넌트 머리가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어느 날 내가 그 말을 했는데, 다음 날 그녀는 긴 머리를 자르고 퍼머넌트를 하고 왔다. 그녀의 얼굴은 몰라볼 만큼 예뻐졌지만 나는 홀로 긴장했다. 내 말이 그 누군가에게 힘을 미치고 있다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녀가 퍼머넌트 머리를 하고 온 그때부터 나는 내 말의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호흡을 가다듬으며 퇴근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크레파스화는 일 주일에 두 번씩 배우기로 되어 있었다.
그 때를 기다리기가 힘들어질 무렵, 우리는 우연히 시장에서 만나 마른 안주를 시켜놓고 맑은 소주를 마셨고, 항구로 나가 바다를 보았다.
그로부터 나는 퇴근만 하면 매일 화실에 나갔다.
크레파스화를 배우러 가기보다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기 위해 나갔다.
언젠가 보니 늘 창턱에 놓여있던 줄리앙과 아그리빠가 자리를 옮겨앉았다. 대신 그 자리에 청년 부르터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언젠가 보니 탁자 위를 늘 지키던 입체도형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병에 꽂힌 화사한 구절초꽃이 피어있었다.
우연히 만나 소주를 먹던 우리는 시간을 약속하여 술을 먹었고, 약속된 시간에 나와 산책을 했다.
그랬는데 그녀는 떠나갔다.
아버지가 그 지역 해군 고위층이었다.
그녀는 아그리빠와 청년 부르터스를 두고, 남쪽 진해로 가버렸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10개월도 더 넘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녀를 찾아가던 길엔 이제 내 발자국은 없다. 내 발자국이 지워진지 오래 되었으니까 누가 그 길을 기억이나 할까. 세월은 사람의 뒤를 쫓아다니며 잠시 발걸음을 늦추는 사이 들꽃으로 아로새긴 길을 냉혹하게 지워버린다. 우리는 그런 섬뜩한 시간과 싸우며 우리 안의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사람에겐 누구나 한 때 오가던 길이 있다.
그 길이 가을 풀잎의 이슬처럼 아름다운 눈물의 길이든 가슴을 찌르는 독한 눈물의 길이든 누구에게나 길은 있다. 그 길을 지우며 또 내며 사람은 이 지상을 건넌다.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헤어질 때마다 화실 문에 등을 대고 서서 웃음을 보내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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