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아침에 신문을 보았습니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아침에 신문을 봤습니다. 집사람은 강릉 동창회에 가고 없고, 딸아이도 직장 일로 없는 빈 집에서 홀로 아침을 맞느라 일찍 집에 온 신문을 꺼내 보았습니다.
수녀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기 수녀님께서 쓰신 글과 제 졸시가 있었습니다.
참,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나를 흔든 시 한 줄’이 하필이면 보잘 것 없는 저의 졸시라니요. 인생을 먼 산의 흔들리는 백합의 향기처럼 그렇게 순정하게 사시는 수녀님을 제 시가 흔들다니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제 손을 놓고 제 곁을 떠나간 저의 시가 무례히 그런 일을 하다니요. 함부로 글을 쓴다는 일이 솔직히 두려워졌습니다.
시가 실린 면을 펼쳐 놓고는 그만 마음이 두근거려 일어섰습니다. 마치 크고 우혐한 폭풍이 막 닥쳐오는 것 같아 아침을 차려 먹고, 샤워를 하고, 커피를 끓여 창밖의 무르익어가는 햇살을 보았지요. 그러면서 거실 바닥에 펼쳐놓은 신문을 저만큼 건너다 보기만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그때 그 벅차오르는 감정이 이렇겠지요. 그렇다고 선뜻 대답할 수도 없는.
저는 그냥 오랫동안 동시만 써왔지 제 동시가 누군가의 품에, 어린이들 말고 어른들의 품에도 가 안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상처만 주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펼쳐놓은 신문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기나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 사이 꽤 여러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앙일보에 이해인 수녀님께서 제 시를 소개하셨더라는.
과거 조그마한 시골학교에 근무할 때 수녀님의 글을 읽고 수녀님과 편지 인연을 가졌던 분, 지금 동시단의 몇몇 분들, 의정부에서 오랫동안 미장원을 열고있는 아내의 친구 분. 고향의 조카와 저를 잊지 않는 고향 친구, 멀리 강릉 동창회에 가 있는 아내의 친구들이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서 우연히 그 시를 보고 있다는.
그분들의 고마운 전화를 여러 차례 받고 나서야 다시 신문 가까이 다가가 수녀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수녀님의 말씀대로 그 무렵엔 사람이든 밥풀이든 성자로 볼 줄 아는 눈이 제게는 있었던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멀리 떨어져와 살고 있는 지금 제게는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번잡해졌습니다. 먹고 산다는 핑계로 제 눈이 병들었습니다.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들을 간직하지 못하고 살아온 저의 지난날들의 번잡함 때문에 마음이 찡했댔습니다.
수녀님께서는 편지 한 줄 쓰실 때에도 펜으로 쓰시고, 또 색연필로 모양을 내시고, 예쁜 스티커를 붙이시고, 손수 사인을 하시고 하는 그 순수한 소녀 적 마음이 늘 부러웠습니다. 그러니까 그 옛날의 순정한 마음을 지금껏 고이 간직하고 계신다는 사실말입니다. 깊은 산골짜기 외로운 학교에서 보낸 편지 한 장까지 일일이 답례를 하시듯 답장을 해주시는 그런 손길이 부러웠지요. 그것이 머리로 글 쓰는 세속의 시인들과 기도와 기원의 심정으로 쓰시는 수녀님의 글과의 차이겠지요. 글이야 누군들 못 쓸까요. 그러나 시와 같은 기도의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요.
오늘 이 아침의 두근두근한 마음을 무엇보다 오래도록 간직해야겠습니다. 그런 두근거림을 주신 수녀님의 이 아침 선물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수녀님 생애에 따뜻이 내려 쌓이길 기원합니다.
그럼, 총총.
권영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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