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마음에 섬이 있다
권영상
해안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면 문득문득 내 마음에 숨은 섬을 볼 때가 있다. 제주 올레 7길에서 밤섬을 만난 이후로 내 마음에 섬이 하나 생겼다. 가끔 그 섬이 생각나면 제주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충동을 받는다. 밤섬이 보이는 푸른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동안 나는 이미 밤섬사람이 됐고, 훌쩍 서울로 돌아왔을 때엔 밤섬도 함께 나를 따라와 있었다.
우리들 마음에 섬이 있다.
섬은 나와 멀리, 저만한 곳에 떨어져 있지만 늘 나와 대화하려 한다. 섬은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언변이 화려하고 뛰어나다. 그의 빼어난 언변이란 고요한 침묵이다. 섬은 침묵의 언변으로 뭇사람과 대화한다. 그의 대화의 특징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킨십이 없다는 점이다. 그 대신 그리움이라는 서정적 언어를 주 무기로 사용한다. 섬은 합리적이거나 체계적이고 문법적인 언어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기피한다. 그와의 대화엔 무엇보다 수준 높은 어휘가 필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가지고 온 쉬운 언어 몇 마디면 가능하다.
그러므로 섬과 대화할 때에는 화법이 좀 서툴러도 되고,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아도 된다. 섬은 성자들이 그러하듯 쉬운 말로 대화하길 좋아한다. 이를테면 ‘쓸쓸하다, 외롭다, 그립다. 눈물, 사랑, 슬픔’과 같은 감정언어로 된 마음과 마음으로 하는 대화가 좋다. 그렇게 몇 번만 대화가 오가도 섬은 벌써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와 맑은 날의 파도처럼 잔잔한 목소리를 우리를 위로한다.
세상에 섬만큼 외로워해 본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섬만큼 홀로 바다와 맞서 본 사람이 있을까. 섬만큼 지칠 때까지 홀로 눈보라와 싸워본 사람이 없고, 수백만 년의 긴 밤을 홀로 지새워보거나 울어본 사람이 없다. 그런 섬이기에 섬과 마주 서면 오히려 우리가 그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섬의 고독이 나의 고독이며 나의 슬픔이 섬의 슬픔임을 알게 된다. 섬을 만나면 우리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앞에 놓고 서로 위로하며 맺힌 아픔의 마디를 푼다.
지난 월요일 강릉엘 갔다. 고향집에서 일을 보고, 혼자 바다가 가까운 강문 근처에서 잠을 잤다. 밤새도록 어둠 저쪽의 파도소리가 베개맡까지 달려왔다. 겨울바다는 거칠었다. 방바닥에 귀를 대고 잠들면 지축을 흔드는 파도소리가 잠속까지 밀려와 내 잠을 파랗게 적셨다. 나는 파도소리에 몇 번이나 깨어나 불을 켜고, 또 끄고 하면서 하룻밤을 잤다.
추운 아침에 일어나 솔숲 너머에 있는 바다를 찾아갔다. 간밤의 파도소리와 달리 바다는 파랗고 잔잔하다. 잔잔한 바다에 바위섬이 하나 놓여있다. 감바위다. 뭍에서 5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바위섬이다. 어릴 적의 여름이면 가까운 경포대해수욕장보다 여기 감바위 근방의 바다에서 헤엄을 쳤다. 우리 또래들 중에서도 헤엄을 잘 치는 아이들은 그 바위섬에 갔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헤엄쳐갈 용기가 없는 나는 바라보기만 했고, 지금도 이쯤에 앉아 그 섬을 건너다보기나 한다.
어쩌면 그때, 나는 헤엄을 못 쳐 감바위에 가지 못하길 잘 했다. 그때 내가 두 발로 저 바위섬에 올라섰더라면 저것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암석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버렸을 거다. 내가 지금도 마음에 섬을 품으며 살 수 있는 건 그때 그 바위섬에 못 가본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때 나는 헤엄을 잘 못 치는 대신 그리움이란 말을 마음에 품고 여기까지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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