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11월의 눈 때문에 잘못 든 길

권영상 2013. 11. 28. 09:05

 

11월의 눈 때문에 잘못 든 길

권영상

 

 

 

 

 

 

눈이 옵니다.

대설특보답게 11월의 큰 눈이 내립니다. 나는 눈을 보고 마당을 나섭니다. 며칠 전부터 눈 내린다며 온 나라의 하늘이 오랫동안 흐렸지요. 그 탓인가요. 11월의 눈답지 않게 푸짐합니다.

이 눈이 오랫동안 내려주기를 바라면서 산을 향합니다. 맑은 날에 가는 산도 좋지만 예기치 않게 비 맞으며 가는 산도 좋고, 오늘처럼 눈 맞으며 가는 산도 좋습니다. 꼭 산에 가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눈을 맞으며 걷는 일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좋네요. 하늘의 무한한 축복을 듬뿍 받는 기분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 이처럼 부드럽고, 이처럼 희고 깨끗한 것을, 이처럼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할 줄 아는 선물을 내려주겠나요.

 

 

 

 

나는 눈을 맞으며 산 입새의 팥배나무 밑을 지납니다. 팥배나무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있습니다. 팥배나무 낙엽더미를 지나갈 땐 그냥 가지 마세요. 낙엽 사이에 숨어있는 빨간 팥배열매를 눈여겨 보아야 해요. 버찌만한, 그러나 버찌보다 열매 가닥이 많은 놈이 참 예쁘지요. 이렇게 추운 날 배고픈 산새를 생각하며 여러 달 동안 키운 것입니다. 그걸 주워 앞니로 꼭 물면 달콤하지요. 산새들도 그 맛을 알아 날 좀 추우면 팥배나무에 모입니다. 지금은 흐드러지게 익어서 달콤하지만 늦은 가을날, 파란 하늘을 보며 팥배열매를 깨물면 눈물이 나올만큼 시답니다.

 

 

 

 

눈은 아직 더 냉혹하지 못해 내리는 대로 다 녹습니다. 춥다춥다 해도 아직 대지에는 오래도록 품어온 열기가 미열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래선지 나무숲은 아직 늦은 가을입니다. 숲길이 온통 떨어져 누운 낙엽으로 넘쳐나도 장정들처럼 서 있는 나무들은 붉고 노란 가을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 참나무들은 연둣빛 잎을 그대로 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생강나무들도 노란 빛을 뿜고 있습니다. 그 많은 나무들 중에 몸빛이 초록인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단풍나무입니다. 단풍나무는 유독 목피가 우아한 초록입니다.

 

 

 

 

이 무렵이면 단풍나무 숲을 지날 때가 제일 좋습니다. 내가 다니는 산길엔 유독 잎이 작고 빨간 단풍나무가 많습니다. 비 오거나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 단풍나무 밑은 유별납니다. 폭 쏟아진 단풍잎들이 숲길을 뒤덮습니다. 빗물에 젖은 잎은 눈이 어릴 만큼 더 빨갛습니다. 갓 날염을 한 화려한 실크 위를 밟는 듯 합니다. 빨갛기만 한가요. 보라도 있고, 주홍도 있고, 다홍도 있고, 연두도 있지요. 노랑 바탕에 점점이 빨간 잎도 있고, 빨간 바탕에 점점이 노란 잎도 있습니다. 길이며, 길섶이며, 바람을 따라 멀리 떨어져 누운 그 언저리 모두 꼭 꿈에서 본 별나라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나는 별을 안 밟으려고 발 끝을 세워 지나갑니다. 춥고 거친 지상이 이 무렵만 되면 천상이 되는 이변을 연출합니다.

 

 

 

단풍나무 숲을 다 지날 때입니다.

나는 멀쩡한 길을 두고 딴전을 피웁니다. 가끔 곁눈질을 해 본 적이 있는 가지 않던 길로 발을 옮깁니다. 눈 탓일까요. 11월의 눈이 나를 길에서 이탈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그 길 위에도 낙엽이 잔뜩 쌓여있었는데 누군가 걸어간 자국이 어렴풋합니다. 이런 날은 날마다 가던 길이 싫어지지요. 날마다 가던 편하고 쉬운 길도 이런 날은 오히려 피곤합니다. 나는 판판해진 낙엽길을 믿고 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은 처음 맛보는 과일맛처럼 새롭지요. 잠깐 비켜난 길인데도 갑자기 숲이 호젓해지는 느낌입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비죽히 나온 나뭇가지 밑을 지날 땐 허리를 숙이고, 발 아래 나뭇가지는 타넘습니다. 찔레덩굴 곁을 지날 땐 내 앞에 간 사람처럼 빙 에둘러 갑니다.

재미있습니다. 바위를 타고 넘고, 눈발에 젖은 풀대궁이에 신발을 흠뻑 적시며 갑니다. 때까치 한 마리 휙 내 앞을 지나고, 두더지가 파올린 붕긋한 흙더미도 십여 개나 만나고, 오목눈이가 강중배기를 해 가지고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신기한 모습도 봅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풀가지에 연한 빗방울이 조롱조롱 탐스럽습니다. 이게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의 길맛인가 봅니다.

 

 

 

 

 

그런데 풀섶길이 점점 길어지는가 하더니 그만 길이 끊어졌습니다. 아무리 기웃거려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처음 이 길로 들어설 때엔 사람 발자국이 보이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길이 왜 사라질까요. 나는 길이 숨어 있음직한 곳을 향해 이쪽 저쪽 걸어나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이 얽혀있어 번번히 되돌아 왔습니다.

 

 

 

잘못 든 길입니다.

나는 지리산이나 설악의 산속에서 이런 경험을 종종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잘못 든 길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잘못 든 길 끝에 서면 자연히 생각이 많아집니다. 돌아서려니 여기까지 온 시간과 정열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입니다. 더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굳이 그 위험한 길을 밀고 가기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엔 날이 곧 저물기 때문입니다. 돌아서기에도 아깝고, 그냥 가기에도 험난한, 길 끝에 서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걸어나오며 나의 불찰을 나무랐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남의 허물을 탓하듯 내 허물을 맹렬히 탓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실수는 늘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렇게 잘못 든 길이 올바르게 걸어온 길보다 더 선명하게 머리에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잘못 든 길 하나 없이 오직 곧고 올바른 길만 걸어왔다면 지금 내 인생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처음에 꿈꾸었던 내 인생의 목표는 쉬이 이루었겠지만 그러느라 목표보다 더 아름다운, 사소하나 오래 기억되는 인생의 부분 부분을 놓친 아쉬움에 가끔 눈물 흘리겠지요. 

나는 더이상 갈 수 없는 길 저쪽 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산버들가지가 얽혀있고, 키작은 나무들과 덩굴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좀 힘들어도 그 길을 내고 가면 늘 가던 길에서 맛보지 못하던 새롭고 신선한 풍경을 만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오늘도 나른한 일상의 길을 걸어가며 미답의 새로운 풍경을 그리워합니다.

나는 그쯤에서 그만 돌아섰습니다.

돌아선다는 일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단인가요. 

오래 내려주길 바라던 눈도 그쯤에서 그치고 맙니다.

 

 

 

나는 다시 아까 그 단풍나무 길까지 걸어왔습니다.

오늘 나는 11월의 눈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 너머의 풍경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산을 무사히 잘 오르고 돌아오면 뭘 하겠습니까. 산을 빠르고 쉽게 잘 타는 법을 안다면 또 뭘 하겠습니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인생을 바르게 살아왔단들 또 뭘 할까요. 그 어디에서건 그 너머를 그리워하는 풍경이 내 마음에 없는 산은 산도 아니고, 어쩌면 그런 인생은 인생도 아닐지 모릅니다.

나는 오늘, 뜻밖의 대설특보 때문에 내 마음에 여백과도 같은 미답의 길을 하나 더 두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오르듯 이 산을 오를 때면 나는 가끔 어느 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그 길 너머를 생각하고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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