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듣는 이 밤
권영상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듣고 안성으로 내려왔습니다. 집안 단속을 좀 해야겠기에 토요일 점심쯤에 내려왔습니다. 상수도 동파를 막으려고 사온 은박지가 달린 보온 원통을 씌웠습니다. 못 입는 옷으로 감싸고 비닐을 덮어 단단히 묶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또 창문 손도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나오는 에어캡(일명 뽁뽁이) 5미터짜리 두 개를 사왔는데 그걸로 아래층 창문과 거실 유리문에 붙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방안이 한결 아늑합니다.
전 같으면 추위가 오든 말든 별 신경 쓸 거 없이 편한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안성에 집을 두고부터는 이것저것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신경한 사람이 특히 바깥 날씨에 민감해졌습니다. 내 몸 하나 그저 간신히 건사하던 내 관심이 바깥 세상 일에 눈을 뜨게 되었지요.
일요일 밤부터 비가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 한다고 했습니다. 그 급강하하는 기온을 한번 겪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얼른 올라가야할 일을 그만 두고 쟁기를 찾아들었습니다. 집 둘레에 무성하게 자라오르던 마른 풀들을 베어내기로 했습니다. 마른 코스모스, 쑥대궁이, 망초, 차풀, 덩굴식물인 사위질빵, 환삼덩굴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그들을 베거나 뽑아서는 텃밭에 쌓고는 불을 붙였습니다.
마르고 대궁이마저 실한 풀들이고 보니 확 일어난 불길이 드셉니다. 분명 바람이 없었는데 불이 붙자, 여기저기 숨어있던 바람들이 달겨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불꽃이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이러다간 집에 불이 옮겨붙을까 두려웠습니다. 나는 얼른 쇠스랑으로 타고 있는 마른 풀을 눌렀습니다. 그들을 태우느라 불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습니다. 불가에 서 있으면 불길은 꼭 내게로 달겨듭니다. 반대편에 가 서면 또 불바람은 연기와 함께 내게로 달려들었지요.
나는 지난 가을에 뽑았던 반쯤 마른 바랭이풀을 그 불 위에 얹었습니다. 불기운이 한결 수그러듭니다. 그러고는 배추밭 귀퉁이에 있는 거름더미 거름을 쇠스랑으로 끌어내어 텃밭에 펴고 밭을 뒤집었습니다. 등허리에 땀이 차는지 속옷이 달라붙습니다. 잠시 손을 놓고 푸슥푸슥 타오르는 불을 봅니다. 불이 순해졌습니다. 이쯤에 서 있는 내 가랑이 사이로 흐린 연기가 천천히 지나갑니다. 그러다가는 또 텃밭 위를 스멀스멀 기어다닙니다.
순하던 연기가 다시 불로 변합니다. 마른 풀에 훌쩍 불이 붙습니다. 나는 쟁기를 곧추세워잡고 그 불을 넌지시 바라봅니다. 불도 흐르는 강물과 다를 바 없네요.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일어나고 시들고, 다시 피고 잦아들고, 휘몰아치다가는 다시 잔잔해지고..... 그 일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네요. 도시로부터 멀리 떠나 와 나는 불의 보호자가 되어 불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비 온다는 데 때맞추어 정리를 잘 하네요.”
건넛집 할머니가 이쪽을 보고 아는 체를 해 주십니다.
“치과에.”
치과에 다니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거길 다녀오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파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날 밤입니다.
10시 무렵부터 비가 왔습니다.
나는 거실 불을 다 끄고 내 방에 들어왔습니다.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여놓아 그런지 방이 아늑합니다. 방바닥에 길게 누워 천장을 봅니다. 굵은 목단무늬 도배지가 오늘에야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여태껏 나그네처럼 여기 와 며칠씩 묵어갔을 뿐 주변의 것들과 차분히 눈맞춤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밤에야 보니 비로소 작은 서가에 꽂힌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낮에 몸을 많이 움직여 그런지 몸을 뉘이니 잠이 옵니다.
나도 농촌 사람들처럼 불을 끄고 일찍 자리에 누웠습니다.
방이 깜깜해집니다. 깜깜한 창문 너머에서 빗소리가 살아나 방안으로 기어들어 옵니다. 사위를 분별 못할 만큼 어두워 그렇겠지요. 밤비는 데크를 두드려보고, 상추를 덮은 비닐로 달려가 그 위로 통통통 두드려 봅니다. 그러다가는 자동차 지붕을 두드리고, 유리창문을 두드립니다. 뭐가 한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요. 이것저것 두드리며 소리를 엿듣나 봅니다. 다락방 처마에 걸어놓은 풍경도 두드려보는 모양입니다. 풍경소리가 쟁그렁, 납니다.
대지 만큼 낮은 뜰방에 누워 지상을 울리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괜히 가슴이 설렙니다. 빗소리에 진한 흙냄새가 묻어있는 듯하고, 애틋한 첫눈의 숨결이 배어있는 듯 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잔다고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 어디서 또 황소 우는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요기 길 건너 최씨 아저씨네 황소가 우는 것 같습니다. 아까 저녁 때에도 몇 번 울었습니다. 겨울비이기는 해도 바깥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외양간이 춥고, 등허리가 시려서 우는 게 아닐까요.
잠이 다 깨었습니다.
다시 불을 켜고 엎드려 책을 읽어봅니다. 도통 책이 읽혀지지 않습니다. 좀 전에 듣던 빗소리에 내 마음이 가 있습니다. 책이야 서울 가 읽으면 되지만 뜰방에서 듣는 빗소리는 그냥 흘려버리기 아깝잖아요.
두드락두드락, 두드려대는 빗소리가 커졌다가 줄어들었다 합니다. 뭉치비가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땅을 두드리는 모양입니다. 나이 스무 살도 아닌, 어지간히 인생을 살아본 내가 이깟 빗소리에 잠을 못 자다니요. 어쩌면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에 와 있나 봅니다. 세상의 것에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다 제 삶의 무게가 있습지요. 그것이 어찌하다 무게의 한계를 어기면 저 자신을 툭 놓치게 됩니다. 빗방울도 그렇게 해서 여기로 떨어져 이 지상을 흔들며 가는 거겠지요.
황동규 시인의 시 <풍장 27>이 떠오릅니다.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이 비가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눈이 되어 내린다고 했습니다.
여기 이불 속에 누워 어느 산비탈을 향해 사선을 긋듯 내리는 그쪽의 눈을 생각합니다. 눈은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마른 나뭇잎을 사각사각 두드리며 내리겠지요.
그 때 그쪽 어느 깊은 산비탈 바위굴에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산짐승이 사각사각 떨어지는 눈소리를 듣겠네요. 그 짐승도 나처럼 갑자기 잠을 잃어 바깥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테지요. 그러다가도 너무 너무 잠이 안 오면 슬며시 일어나 하얗게 내리는 겨울 눈을 내다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우우우.....”
어쩌면 이 곳의, 밤이 추운 황소처럼 한번 울어도 보겠지요.
겨울 눈을 내다보면 산짐승도 생각이 많아지겠지요. 그도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 절기와 우주의 냉랭한 기운을 모를 리 없을 테니까요. 밥을 먹고 육신을 거두며 살아내야하는 산짐승에겐 이 냉혹한 밤이 잠이 안 오는 밤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이 나를 알 수 없는 어느 깊은 시간 속으로 이끌고 가나 봅니다. 깜깜한 이 밤, 하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일은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 안 하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인들은 그런 일은 알려고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냥 그런 이치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늘 품고 살라고만 했지요.
밤이 자꾸 깊어가네요.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오히려 잠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건 내 뒤에서 보이지 않는 큰손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일 아침엔 얼른 일어나 비닐 속에서 크는 상추를 떼어 초록 샐러드를 해먹어야겠습니다. 식물의 기운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비구름 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 또한 다들 안녕히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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