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온 벌 한 마리
권영상
가끔 교실에 참새가 들어온다.
수업을 하다보면 열린 창으로 참새가 들어와 황급히 돌아나갈 때가 있다. 나비도 가끔 몰래 들어온다. 몰래 들어온 참새나 나비는 그들 몸짓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서른 명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힘을 가지고 있다.
교실은 전통적으로 아이들만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 아이들이 아닌 고양이나 길잃은 강아지, 때로는 바퀴벌레 한 마리만 들어와도 아이들은 기절할 듯이 놀란다. 대개 그들의 중심에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누가 쿨럭, 기침만 해도 한계 이상의 호들갑을 떤다. 연필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란다. 그들은 기회만 되면 교실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어제였다. 수업 시간에 벌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왔다.
“선생님! 벌이요! 벌! 저기 벌이요!”
호들갑을 떨며 공부 시간을 흔드는 녀석이 있었다. 동현이었다. 그는 앉아서 말해도 될 일을 책상을 앞으로 삐그덕 내밀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모두 그 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저기요!’ 그가 벌의 행방을 다시 가리켰다. 교실 뒤 창가 쪽이었다. 다들 앞을 보고 있을 때에 동현이는 왜 뒷편을 보았던 걸까. 동현이의 말에 한순간 모두 뒤를 돌아다 봤다. 벌은 닫힌 창문에 자꾸 머리를 부딪는다. 저도 무심코 들어와 보고는 놀랐겠다. 이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목이 아니라는 것, 사내아이 수십 명이 가득히 들어 앉아 있다는 것, 거기에 놀랐겠다. 도로 나가려고 창문에 머리를 자꾸 부딪는다.
“선생님, 잡아야 해요!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구요!”
동현이에게 흥미진진한 기회가 온 것이다. 시키지 않았는데 빗자루를 들고 와 벌을 잡는다고 설쳐댄다. 껑충껑충 뛰어오르다가 급기야는 책상 위에 올라서서 빗자루를 내두르며 난리법석이다. 그러더니 벌을 향해 냅다 비를 던졌다. 동현이의 빗자루에 놀란 벌이 교실 앞쪽으로 붕, 날아왔다. 지켜 보던 아이들이 일어나 우루루루 앞으로 몰려 나왔다. 그러느라 책상이 쓰러지고 의자가 밀쳐나고, 자빠지는 아이들 비명이 요란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들이라고 동현이 마음과 다를 게 없겠다.
놀라는 친구들을 보는 동현이는 행복해 죽을 지경인 것 같다. 벌이 날아온 교실 앞으로 빗자루를 들고 다시 달려온다. 또 몇 번인가 허공을 향해 빗자루를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벌이 부웅, 저공비행을 하며 다시 뒤쪽으로 날았다. 아이들이 그냥 있을 수 없다. 우우우우,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몰렸다. 교실이 삽시에 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니까 다들 제 자리 앉아요!”
나는 아이들을 만류했지만 허사였다. 이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곧 공부가 시작될 텐데, 그 말에 넘어갈 리 없다. 아이들은 이제 벌의 조그만 날개짓에도 놀란다. 마치 치어걸의 손짓에 열광하는 관중들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벌도 아이들 못지 않게 수상하다. 열린 창 쪽으로 빗자루질을 해주는 데 굳이 닫힌 창으로만 간다. 그러니까 지금의 교실 상황은 벌과 동현이와 그에 부응하는 아이들의 합작품이다. 아니다. 나도 끼어있다. 내가 거기 없었으면 벌 한 마리에 그리 놀랄 인물들이 아니니까.
한참만에 벌은 간신히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선생님! 첫 키스 이야기 해주세요!”
아이들이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넘길 리 없다.
(교차로신문 2010년 9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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