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내 몸에서 밥 냄새가 난다

권영상 2013. 7. 24. 16:18

 

 

내 몸에서 밥 냄새가 난다

권영상

 

 

 

 

 

나는 밥을 즐겨 먹는다.

줄콩을 넣은 밥도, 보리를 넣은 밥도 즐겨 먹는다. 강원도 태생이니 감자를 적당히 섞은 밥도 좋아한다. 즐겨 먹기만 하는가? 아니다. 잘 먹기도 한다. 식으면 식은 대로, 덥히면 덥힌 대로 밥이면 다 잘 먹는다. 밥을 잘 먹는 건 어머니한테 배웠다. 어머니는 밥을 잘 자셨다. 평생을 거르지 않으셨다. 얼마나 밥을 잘 자셨는가 하면 숨을 놓으실 때도 먼저 밥부터 자셨다. 밥 한 그릇을 뚝딱 자시고 병원에 가 그 길로 가뿐하게 돌아가셨다. 그때 어머니 연세가 아흔여섯이었다.


 

 

나도 죽으러 가기 전까지 밥을 잘 먹을 생각이다. 그 연습을 위해 아무리 바쁜 아침이어도 밥은 꼭 먹고 출근한다. 아내는 내 성미를 잘 알기에 나보다 먼저 깨어난다. 저녁엔 나보다 먼저 퇴근한다. 밥 잘 먹는 놈 데리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나는 들어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밥 먹는 일을 고귀한 노동의 연장 선상으로 생각하니까.

낡은 이념이긴 해도 일하지 않고 밥을 목구멍 너머로 넘길 수는 없다. 밥은 여럿이 함께 어울려 먹으면 행복하다. 혼자 먹을 때면 고독과 눈물을 선물하기도 하는 것이 밥이다. 밥은 그냥 밥인 듯해도 그 안에 만족과 비애와 절박한 고독감이 숨어있다. 혼자 밥을 먹을 때 고독을 느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밥은 단 한사람의 포만감을 싫어한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함께 먹이고 살리는 것이 밥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엇보다 밥 먹는 일을 앞세운다. 그런 까닭에 결혼을 하면서 집은 못 사도 아내에게 가벼운 승용차를 먼저 선물했다. 직장을 가진 아내의 퇴근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아내가 가벼운 몸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짓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아내에겐 그 차가 평생 밥을 짓게 하는 족쇄였다.
아내는 다행히도 밥 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일이 매우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밥 먹어!” 라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얼른 밥 먹지 않고 뭐해!”

라며 재촉하는 말도 좋아하고, 밥을 거르는 행위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좋아한다.

 

 


때로는 밥이 나를 난처하게 만들 때도 있다. 언젠가 퇴근을 하여 바지를 벗을 때였다. 팬티 앞 부분에 묵직한 것이 매달려 있었다. 마른 밥덩이었다. 나는 놀랐다. 밥풀도 아닌 밥 한 덩이가 다른 데도 아닌 팬티에 붙어 오다니! 외박없이 출퇴근하는 내게 이건 충격 이상의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예전, 귀한 집 젖먹이 녀석들은 늘상 벗고 살았다. 그런 녀석들은 밥상보다 벌거벗은 제 가랑이 사이에 밥그릇을 놓고 서툰 방식으로 밥을 떠먹었다. 반은 흘리며 반은 입에 넣으며. 그런 밥 먹기가 끝나고 일어서는 걸 볼라치면 가관이다. 고추며 불알에 밥풀이 엉겨붙어 있기 일쑤다. 그의 어미는 그게 또 뭐가 그토록 행복하신 일이라고 고추 끝에 붙은 밥알을 일일이 맛있다, 맛있다 하며 떼어 먹었다.

 

 


내 생각이 거기쯤 갔을 때에야 팬티에 밥덩이가 붙은 이유를 알아냈다. 팬티만 입고 아침을 먹을 적에 한 술 떨어진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나는 뭔가 먹는 일에 서툴다. 옷을 다 챙겨입고 밥을 먹어도 밥 먹은 표를 낸다. 양복 소맷단이며 앞섶에 밥풀이나 김치국물을 묻혀 다니기 다반사다. 밥에 대한 한 나는 탐욕적이지 않다. 단지 목숨을 부지시켜주는 ‘밥 한 그릇’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식탐하지 않는다. 미식가도 아니다. 오직 밥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할 때 사랑에 몰입하듯 밥 먹을 때 밥 먹는 일, 그 일에만 몰입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몸에서 밥 냄새가 난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 듣는 게 무척 좋다.

 

(교차로신문 2010년 8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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