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이씨의 꿈

권영상 2013. 7. 19. 13:25

 

 

이씨의 꿈

권영상

 

 

 

 

퇴근 무렵, 대학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당동 근처에 있다며 한번 만나자고. 술을 끊은 친구라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떠올렸다. 미술관 근처에 가본 지 나도 오래되었다. 만나자마자 나는 그리로 핸들을 꺾었다. 친구는 요 몇해 전,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수척했다. 담배마저 끊은 그를 데리고 숲길을 돌아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이 임박했다. 우리는 서둘렀다. 작품을 보며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며 건성건성 지나쳤다.

그러던 우리는 어느 한 작품 앞에서 그만 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쳐 가기엔 왠지 쓸쓸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가슴에 무지개 한 조각을 안고 서 있는 나무조각 인물이었다. 시골 논두렁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남정네 같기도 하고, 전철이나 만원 버스에서, 또는 재래시장이나, 허름한 회사의 정문 앞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지친 삶의 자국이 많은 그런 사내였다. 두상이 크고 아래턱이 좁은 전형적인 우리네 모습이었다. 얼굴에 비해 어깨는 사뭇 좁았다.

사람들 앞에 한번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 그렇겠다. 오직 가족과 하루 먹을 밥 걱정으로 아침 출근을 하는 남자, 상사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이렇다할 대꾸 한번 해보지 못하는 남자, 낡은 외투를 입고 추운 담장 그늘 밑을 걸어가는 그런 사내의 모습이었다.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 건 전신에 비해 두상이 큰 기형적인 몸이었다. 그 몸의 형태는 풍족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의 것도 아니고, 골프채를 들고 유유히 필드를 걷는 이의 몸도 아니었다. 그의 몸은 그 흔한 브론즈나 대리석이 아니라 먼지 켜켜이 묻고 나무벌레 간간히 갉아먹은 낡은 통나무였다.

그는 결국 오래된 통나무로 만들어진 별볼 일 없는 몸을 받아안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꿈은 있었다. 무지개 한 조각이다. 그것도 빛깔 다 죽은 동강난 무지개다. 반의반만한 무지개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대체 그 한 동강짜리 무지개 안에 감추어진 꿈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하루 먹을 밥과 하룻밤 누울 가족의 잠자리, 그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려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정면에서 옆으로 한 걸음 옮겼을 때다. 그의 등 뒤에 그가 숨기고 있는 그의 슬픈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외로이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제 몸보다 더 큰 질곡의 그늘을 숨기며 살았다. 보이는 것 이상의, 그보다 더 아프고, 더 질긴 그늘이 그에게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 동강만한 무지개라도 없었다면 그는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나는 친구와 함께 벽에 붙어있는 작품설명서를 향해 걸어갔다. 조그마한 이름표 안에 작품명이 간신히 적혀 있었다. <이씨의 꿈>. 무너질 듯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는 문 닫을 시간에 맞추어 미술관을 빠져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길게 이야기했다. 세 살에 생모를 잃고 두 명의 계모 밑에서 성장한 이야기였다. 숨겨진 깊은 그늘이 그에게도 있었다. 쉰 나이를 넘길 때까지 하루도 생부를 미워해보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그러나 오늘은 아내 모르게 생부를 찾아가 하룻밤을 묵고 내일 내려가겠다며 차에서 내려 신림동 방향으로 갔다.

대관절 무지개를 안고 사는 이 땅의 ‘이씨의 꿈’이란 게 무엇일까. 차에서 내려 힘없이 걸어가는, 그의 좁은 등에 숨은 쓸쓸한 그림자를 본다.

 

(교차로신문 2010년 7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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