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전역을 축하합니다

권영상 2013. 7. 19. 13:18

 

전역을 축하합니다

권영상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고향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 볼일을 마친 뒤에 다시 올라오려다가 문득 하룻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갈 때는 가는 김에 좀 쉬었다 와야지, 하면서도 일을 마치면 서둘러 올라오곤 했다. 나는 가까운 곳에 사는 큰형님의 아들내외네 집에 가려고 둘째 조카한테 연락을 했다. 저녁 식사는 했으니 술이나 한 병 사들고 밤길을 찾아갔다. 그는 나보다 서너 살 적지만 나보다 세상을 공들여 산다.


 

 

나는 내 일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사는 편인데 그는 다르다. 제 가족은 물론 집안 대소사에도 마음을 쏟으며 산다. 그는 남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안다. 챙겨줄 건 챙겨주고, 위로해 줄 건 때 맞추어 위로해 준다. 그는 배운 게 별로 없는데도 경우가 밝고 일의 선후를 잘 안다. 그런 까닭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그에게 먼저 조언을 구한다. 그런 그와 하룻밤을 지내고 싶어 그를 찾았다.


 

 

내가 도착하자, 그들 내외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던 나는 거실 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엔 큼직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보는 그것의 반만한 크기였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엔 이런 프린팅 된 글귀가 박혀 있었다.

‘권혁동의 병장 전역을 축하합니다, 가족일동’.

권혁동은 그의 맏아들이다.

그 녀석이 잦은 휴가를 받아 오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벌써 제대를 한 모양이었다.


 

 

제대를 한 늠름한 녀석이 내게 와 인사를 했다. 나는 그에게 전역 축하의 악수를 해주고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누구나 아들을 둔 사람이면 다 군에 보내고 다 제대하는 법인데 조카는 다르구나, 했다. 내 놀라는 표정을 본 조카는 현수막 가게에 가 부탁만 하면 금방 뽑을 수 있다며 나의 놀라움을 잠재우려 했다. 그의 말대로 돈 몇 만원과 글귀만 주면 단숨에 현수막을 뽑아올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장과 벽에 색색의 풍선 20여개가 달려 있었다. 일일이 풍선을 불어 끈으로 묶고 의자에 올라서서 그걸 하나하나 천장에 다는 일은 돈 몇 만원으로 척, 해놓듯 해놓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들의 전역을 맞기 위해 현수막을 붙이고 풍선을 달던 그들 내외의 착한 손길이 부러웠다. 그들은 그 일을 하며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남들 다 무덤덤하게 맞는 아들의 전역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을 줄 아는, 아니 그런 의식을 치러줄 줄 아는 조카 내외의 진지한 마음에 놀랐다.


 

 

조카의 아들 녀석은 전방 지피에 근무하느라 고생한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걸고 분쟁 지역에 나가 휴가 한번 못나온 그런 군대도 아니었다. 집 가까운 군부대에 배치 받아 한 달이 멀다하고 제 집을 들락거린 녀석이다. 그러니까 군 복무를 했다 해도 시시때때 보아온 아들이다. 내가 부러운 건 그렇게 어제까지 본 아들을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듯 맞을 줄 아는 그들의 부모다운 마음이다. 전역한 아들이 제 아버지를 위해 사왔다는 술을 내놓았다. 그는 그 술을 내게도 한잔 따라 주었고, 나도 그 녀석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행복한 밤이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전역을 축하합니다’를 떠올렸다. 그간 나는 설레임 없이 세상을 살았다. 힘들게 써 모은 원고로 책을 낼 때에도, 아내가 그림 전시회를 열 때에도, 방학을 맞아 집에 온 딸아이가 인턴 면접에 합격했다 해도 그저 남들 다 하는 일쯤으로 무덤덤하게 대해 왔다. 누가 더 행복할까. 둘째 조카의 부모다운 인생을 배운다.

(2010년 7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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