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에 젖게 하는 청개구리 소리
권영상
밤이 조용히 깊어갈 때면 어디선가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개구리 보다 목청이 높고, 빠르면서도 가볍다. 밤 9시 뉴스의 절반쯤에서 텔레비전을 끄면 창밖에서 예의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창을 타넘어 왔다. 그때마다 어디서 청개구리가 울지? 하고는 말았다. 아파트 주변에 나무들도 있고, 풀숲도 있으니까 그냥 어딘가에서 개구리가 우는구나, 했다.
자정 무렵,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막 잠에 들 때였다.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또 아련히 들려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곽곽곽곽, 하는 애잔한 울음소리가 밤을 흔든다. 순간,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막막함과 아득함이 느껴진다. 개구리 울음 특유의 야생성 때문인지 청개구리와 방안에 누워 있는 나와의 거리가 사뭇 멀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드는 자정이다. 밤의 무게마저 나를 짓누른다.
고향집은 들판 끝에 있다.
집 앞엔 호수로 흘러가는 도랑물이 있고, 도랑 건너엔 논이 있었다. 물이 넉넉한 고향이어서 논마다 물이 흔했다. 무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모내기를 하고 나면 논은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그 후부터 무논은 개구리들 차지다. 그들은 해가 떨어지고 이슬이 내리면 울어대기 시작한다. 반딧불이가 어룽어룽 날아다닐 때면 개구리 울음 때문에 고단한 논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개구리는 논에서만 우는 게 아니다. 담장 둘레에 있는 호박밭이나 오이밭, 또는 집마당 오동나무 위에서도 운다. 그들이 바로 청개구리이다. 나무 위에서 청개구리가 울면 마치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요란하다. 은밀한 야음을 타고 느닷없이 소리치는 울음은 연발 소총소리 같다. 개구리들은 지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음량으로 울어대지만 청개구리는 다르다. 산발적으로, 매우 높은 고음으로 밤을 뒤흔든다.
이튿날 밤이었다.
그 밤도 뉴스 시간을 끝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그 때였다. 갑자기 고요해진 틈을 타 청개구리 소리가 또 들려왔다. 곽곽곽곽… 나는 아내에게 지난 밤의 청개구리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도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사이, 또 한바탕 청개구리 울음이 들려왔다. 이야기를 멈추었다. 대도시, 이 건조한 아파트의 불 켜진 방안에서 청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 동안 먹고 사는 일에 매여 그런 울음소리를 시시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치 시골 어디에 주말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한번 찾아가 볼까? 대체 어디서 우는지.”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물었다.
“그냥 좋다, 하고 들어요. 실망하지 말고.”
아침 국거리를 만들던 아내가 나를 만류했다. 아내의 물 트는 소리가 멎으면 또 어디선가 청개구리 울음이 들려왔다. 은은히, 또는 아득히, 왠지 마음을 흔드는 듯한, 혹은 애수에 젖게 하는 듯한. 나는 그 울음에 이끌려 기어코 아파트 마당에 나갔다. 5분, 그 정도의 간격을 두고 울음소리가 날아올랐다.
열린 담장 하나 사이로 선 이웃 아파트 뒤뜰이 발원지였다. 재건축을 하여 얼마 전에 입주한 아파트다. 청개구리 울음소리는 기계음이었다. 나를 만류한 걸 보면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연을 가까이 두려는 그쪽 아파트 사람들 마음이 고귀하게 느껴졌다. 비록 기계음이긴 하지만 유사음에도 고향은 있다. 곽곽곽곽…마음이 고요해진다.
(교차로신문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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