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달리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권영상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공해가 심각하다.
요즘 다량으로 쏟아져오는 메시지는 대출서비스 문자다. 하루에도 몇 건씩 날아온다. 주로 전화 한 통으로 몇 백만 원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들이다. 때로는 몇 천까지 ‘무담보 대출 전화요’라는 문자도 있다. 가만히 그런 문자를 들여다보면 문자에서 유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은 파산하고 싶지 않으세요?’ 라는.
그 말고도 또 있다.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광고다. ‘정품 수입 도매가 전국 후불제 효과 100%’. 나를 과신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 그런 약품에 의존할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 때로 나는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얘들이 지난 밤의 나를 엿보았나? 아님 나의 밤일들이 얼른 망가져서 빨리 이걸 쓰라는 건가? 그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일로 주눅까지 들 일은 없겠다. 내가 가르치는 중3 아이들도 농담삼아
"선생님, 어제 저 비아그라 문자 받았어요."
그러며 제 휴대폰을 열어 으쓱하며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많다.
이동통신사들의 휴대폰 번호를 바꾸라거나 통신사를 바꾸라는 문자, 유선 채널에 가입해 달라거나 ‘대리운전 서울 경기 인천 1만원부터’ 라는 문자도 만만찮게 날아온다. 거기다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는 과정에서 그 전 사람이 진 은행빚과 이자를 갚아달라는 문자에 나는 한동안 시달렸다. 그러니까 앞선 번호 주인의 나쁜 행적 때문에 이유없이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런 문자서비스들은 무차별적이다. 밤낮이 없다.
‘내일 소풍갑니다. 원복(회색 체육복)과 김밥, 음료수, 과일을 챙겨 보내주세요.’
다 읽고나서 나는 문자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발신자가 없는, 그냥 전화번호만 있는 문자였다. 어느 유치원에서 보낸 문자인지는 몰라도 내일 어느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모양이다. 김밥과 음료수와 과일을 챙겨 보내달라고 한다.
갑자기 내가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다. 나는 엄마가 챙겨준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내가 즐겨 마시는 오렌지 쥬스를, 내가 좋아하는 키위를 가져갈 수 있다. 그걸 가지고 어느 개울가에서 또는 놀이공원 벤치에서, 또는 코스모스나 메밀꽃 핀 원두막 어디쯤에서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소풍을 간다는 것. 집이나 유치원 문을 열고, 뭔가 열린 공간으로 나간다는 것, 그것만으로 흐뭇하지 않은가. 나는 괜히 소풍을 간다는 그 유치원이 어느 유치원인지 문자를 보내어 알아보고 싶은 유혹에 한동안 빠졌다.
그런가 하면 이런 문자도 받았다.
‘어제 저녁에 예쁜 아들 건강하게 출산했어요. 2·12로 작기는 하지만 아주 건강하답니다. 축복해주세요^^’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애기를 낳을 만한 이들을 더듬어 봤다. 없다. 내게 며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딸도 없다.
그렇다면 누굴까. 분명 친정 식구들이나 시가쪽 사람들, 아니면 건강하게 출산해 주기를 기원하는 친구들에게 보낸 아기 엄마의 문자다. 그 문자가 내게도 한통 실수로 온 거다.
그들 중에 못 끼어있다 해도 그 아기의 출생을 진정한 마음으로 축복해 주고 싶었다.
‘큰인물 되게 하시려고 조금 작은 아기를 주신 모양입니다. 건강하게 키우시기를’.
나는 그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누군가를 위한 축복은 다 아름다운 일이지만 특히 새로이 태어난 그 티없는 영혼을 위한 축복은 더 없이 아름답다. 그러기에 그런 기원을 하는 순간, 내 영혼마저 순수해짐을 느꼈다.
잘못 받은 문자이긴 하지만 뜻밖의 샘을 만난 기쁨을 누린다. 이런 문자라면 하루에 몇 통씩 날아온다 해도 싫지 않겠다.
(교차로신문 2010년 10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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