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에서 내려놓은 랜턴
권영상
가끔 가까운 청계산에 오른다.
작은 배낭에다 사탕 조금, 물 조금, 휴지 조금, 우의 한 장, 이렇게 담아 메고 간다. 그 가뿐한 걸 배낭이라고 짊어지고 보면 예전 젊었을 때의 배낭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 설악을 오를 때면 욕심껏 배낭을 키웠다. 산을 오르는데 요긴한 것이든 아니든, 산 냄새가 나는 것이면 모두 쟁여 넣었다. 배낭의 무게만도 40킬로는 넘었다. 사실 그만한 짐의 무게가 없으면 2,30대엔 산을 오르기 힘들었다. 산은 순전히 짐의 무게로 올랐으니까. 그러던 것이 차차 이런 저런 타산으로, 또는 나이를 먹으면서 배낭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종잇장 한 장도 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기있게 짊어지던 배낭에서 나는 어떤 짐들을 내려놓으며 살아온 걸까. 내려놓은 짐 중에 내려놓아서는 안될 것들은 없었을까?
있다. 랜턴이 있다. 배낭 속에 꼭 넣고 다니던 랜턴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랜턴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랜턴 없이도 갈 수 있는 만만한 길만을 골라 걸었다.
젊었을 때 나는 험한 길을 즐겨 걸었다. 길 아닌 산비탈이나, 남들이 가지 않는 험난한 길을, 그것도 혼자 오르기를 즐겼다. 혼자 산을 오르다 보면 도중에서 밤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즈음 나의 산행엔 랜턴이 필수품이었다.
그 시절, 나의 산행은 매우 소모적이고 비경제적이었다.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내가 가는 길을 지켜봤다면 나의 산행 실력을 형편없이 평가했을 것이다. 도중에 길을 잃어 간 길을 다시 돌아오고, 그 길을 다시 또 걸어가는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를 바라보았을 테니까. 그래도 그때는 무모한 산행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때가 나의 청춘이었으니까.
그 무렵은 일부러 랜턴이 필요한 시각을 골라 걸었다. 두려움과 마주 서기 위해 일부러 밤에 올랐고, 산정에 올라 하산할 때도 일부러 일몰이 끝난 시간에 내려왔다. 그때는 일몰이 ‘구경거리’였고, 별을 보거나 산짐승 푸드덕대는 소리 듣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가끔 산짐승 발자국 소리에 가슴 철렁, 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런 때에도 나는 랜턴이 있어 외로운 산행이 무섭지 않았다. 랜턴은 나의 앞길을 비추어 주었고 나는 랜턴의 불빛을 믿었다.
그러던 나의 산행이 랜턴을 두고 다니면서부터 달라졌다. 일몰 이후의 산행은 피했다. 그때부터 나는 평탄한 산길을 골라 다녔다. 혼자 떠나기보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길 좋아했고, 가급적 안전한 대피소나 산장을 찾아 잠을 청했다. 나이 들면서부터는 민박을 찾았고, 랜턴 불빛보다 안락한 주거시설의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불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환한 불빛 아래에 앉아 산골짝 물소리나, 풀벌레 소리, 또는 느닷없이 만나는 밤비 소리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숙박에 정이 들고 말았다.
요 몇 년 전이다. 청계산 원터골 등산용품 매장에서 랜턴 하나를 샀다. 사놓고도 여지껏 써 본 일이 없었다. 그 동안 마른 길만 골라 다니며 산을 올랐으니 쓸 일이 없었다. 어딘가에 간수해 두었을 랜턴이 생각나 여기저기 뒤지다가 찾아냈다. 배터리는 물론 이미 나갔고, 머리에 두르는 밴드는 부분 부분이 녹아버렸다. 그냥 버리기도 아까워 밴드를 떼어내고 다시 서랍속에 넣어두었다.
짐이 무겁다며 나는 내 청년 시절의 배낭에서 랜턴은 물론 이것저것들을 내려놓았다. 꿈 많던 그 시절의 배낭에서 나는 또 어떤 것들을 내려놓으며 여기까지 온 걸까. 혹시 그것들이 내 꿈의 방향을 지켜주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은 아니었을까.
(교차로신문 2010년 1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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