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까꿍이의 서러운 눈물을 알겠다

권영상 2013. 5. 23. 22:12

까꿍이의 서러운 눈물을 알겠다

권영상

 

 

 

 

 

서울대에서 신림역으로 가는 고갯길은 혼자 걷기에 좋다. 산을 타고 지나가는 계절을 힘 안 들이고 볼 수 있고, 또 호젓해서 좋다.

그 고개를 넘을 때가 12시 30분쯤.

길옆에 ‘어탕 국수’라는 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어떤 음식인 줄도 모르고 들어섰다. 요행히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 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이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 이들 같았다.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탕 국수’를 시켰다. 추어탕 국물에 국수를 넣어 끓인다는 메뉴다. 그걸 시켜놓고 책 한 줄을 읽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 이야기가 귀에 솔깃 들어왔다.

 

 

 

“글쎄 말이야.”

그분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까꿍이 있잖아.”

나중에야 알았지만 까꿍이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 여자 분의 4살 난 손녀였다.

동네 사람들이 놀러오면 아기가 예뻐 '까꿍아, 까꿍아!' 하며 업어도 주고, 안아도 주고, 시장에도 데려가고, 그랬단다. 집안 식구들도 어릴 때부터 '까꿍이, 까꿍이!' 했단다. 그 말을 들으며 큰 손녀도 저를 가리킬 때면 '할머니, 이거 까꿍이 거 맞지?' 그런 식이었다 한다.

“그 까꿍이가 어제 처음으로 유아원 갔다가 울며 온 거야.”

“아니, 왜 울며 왔대?”

옆에 앉은 분이 물었다.

“왜 울며 오냐니까 글쎄, 이러는 거야. 나 원 웃겨서.”

“뭔데?”

옆에 앉은 분이 다시 채근했다.

“글쎄, 선생님이 까꿍이 안 불러 줘서 운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옆자리의 분이 다시 물었다.

"제 이름이 지성미인데 까꿍이는 까꿍이인 줄만 알았던 거지뭐."

그제야 그 자리에 앉은 분들이 파대웃음을 했다.

물론 나도 눈을 책에 두며 실룩실룩 웃었다. 안 웃으려 해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모두들 ‘울만 하네’, ‘울겠구만 뭐.’ ‘을마나 슬펐을까.’ 그러며 한 마디씩 했다.

그분들도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분들 같았다.

 

 

 

 

잠시 후, 그분들이 일어섰다. 식사를 마친 나도 그분들이 떠난 뒤 일어섰다.

그 어탕 국수집을 나와 신림역으로 걸어 내려가며 나는 그 까꿍이 때문에 또 몇 번이나 웃었다. 4살배기 까꿍이는 다들 자신을 까꿍이, 까꿍이 하니 자기 이름이 까꿍이인 줄 알았겠다. 그러니까 까꿍이는 까꿍이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의 기호로 여겼다. 그런데 유아원 선생님은 출석을 부를 때도 지성미로 불렀고, 친구들도 자기를 지성미, 지성미 하고 불렀을 테다. 그러니 까꿍이는 이 달라진 상황에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을까.

그때의 까꿍이 기분이 어땠을지 약간은 짐작이 갔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퇴근을 할 때면 나는 늘 서울역에서 전철을 탔다. 지난 해 겨울이다. 서울역에서 지하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칼레이터에 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양복 재킷을 혐오하는 나는 검정 점퍼를 입고 있었다. 밀리터리 패션 점퍼였다. 182센티 키의 밀리터리 스타일 점퍼를 입은, 수염이 좀 있는 내가 경찰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두 명의 경찰이 기다렸다는 듯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자는 거였다.

나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없었으니까.

그러자 그들은 내가 더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내 앞에 한 발 바짝 다가섰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 명함을 꺼내어 보여줬다. 거기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로 된 내 이름과 내가 다니는 직장과 집 주소와 전화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정보가 적힌 이 읽기 쉬운 명함에서 고개를 돌렸다.

 

 

 

“주민등록번호 좀 불러주세요.”

경찰은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에 내 번호를 받아칠 태세였다.

유아원 선생님이 까꿍이 대신 지성미를 필요로 하듯 내 앞에 선 이 권력은 실물인 권영상 대신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이들이 한 사람의 시민을 그들이 매긴 번호로 이렇게 관리하고 있구나, 하는 불쾌감이 들었다. 그 단말기 안에는 나대신 권력이 매겨놓은 내 번호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매겨놓은 내 번호를 불러주었다. 경찰은 들고 있는 단말기에 내 번호를 입력했다.

 

 

 

 

“앗, 실례 많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나에 관한 모든 정보가 거기 뜬 모양이다. 두 사람의 경찰은 내가 원하지도 않은 거수경례를 내게 했다.

그들 곁을 지나오는 내 기분이 묘했다.

키 182센티, 강릉 태생이니 북방계통의 골격을 가진 게 나다. 내 그런 모습이 경찰들에겐 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1970년대나 80년대, 나는 그 때를 건너오며 이런 수모를 여러 차례 당했다.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똑 같은 옷을 똑 같이 입던 기성품 시대였다. 국민의 표준키보다 큰 나는 기성품의 세례를 못 받았고, 그런 나의 외모는 늘 검문의 대상이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당하면서 나는 국가가 국민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 당시 국가는 사이즈가 비슷한 기성품 옷을 입혀놓고 시민을 편리하게 관리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항상 표준 키보다 큰 시민이 우선 관리 감시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니까 기성품은 국민을 관리하는 일종의 한 도구였으며 표준치보다 키 큰 사람은 위험 인물이었다.

 

 

 

지금은 그런 원시적인 방식을 쓰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인격에 주민등록번호를 매긴다. 우리나라 국민이 되려면 우선 주민등록번호부터 외어야 한다. 그게 우리나라 세상에 길들여져 가는 첫 번째 과업이다. 내 이름은 잊어도 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잃어버릴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군에 입대해서도 국가는 긴 군번으로 우리를 관리했고, 정기간행물 회사나 백화점도 고객을 관리한다며 사람마다 고유번호를 매긴다.

노고의 댓가로 받던 월급은 통장 입금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 통장번호가 있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우리가 애써 수고한 노동의 대가를 만져보지 못하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번호로 치부되는 허상의 존재로 전락해 갔다. 우리는 신용카드의 이면에 숨겨진 노림수를 잊은 나머지 주머니가 텅 빈 빚투성이가 되었고, 동시에 영혼이 없는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 뒤에 은밀히 숨겨진 카드 번호가 있음을....

 

 

 

원고료 문제로 전화가 올 때도 그렇다.

주민등록번호와 통장번호를 묻는다. 그럴 때를 위해 나는 열심히 통장번호를 외고 또 왼다. 한 달에 한두 번 차를 모는 내가 언젠가 차를 몰고 교외의 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그 음식점엔 차를 주차하면 입구에다 키를 맡기게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관리하는 분이 맡겨놓은 키 판 앞에서 나의 차량 번호를 물었다.

내 차의 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4312, 아니다. 4132?

숫자뿐 아니라 나는 지금도 이 숫자 앞에 붙는 ‘가나다’도 모른다.

어떻든 그때 나는 내 차를 주차시켜 놓은 곳에 가서야 알아냈다. 음식점의 편리한 주차 관리를 위해 나는 내 차 번호를 외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때 관리인은 내게 키를 주면서 내 전화번호 적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멀쩡한 남의 차를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셨다. 나를 붙잡아 두는 대신 그는 내 전화번호를 인질로 삼은 셈이다. 그 전화번호 안에 권력이 숨겨놓은 내 정보가 또 있다. 내 차량의 번호를 외지 못하는 걸로 나는 왜 바보 취급을 당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부조리하다.

 

 

 

 

나는 까꿍이를 까꿍이로 불러주지 않더라며 울며 돌아온 까꿍이의 심정을 안다. 자신은 분명 까꿍이인데 선생님이 자신을 지성미라고 부를 때 까꿍이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나는 분명 나인데 나를 나로 상대하지 않고 그들이 매긴 번호로 나를 이해하려는 권력이 야릇하다. 까꿍이가 어른이 되어 또 한번 주민등록번호 앞에서 흘리게 될 눈물이 떠오른다.

요즘도 가끔 은행이나 유선채널 회사에서 계약 연장을 하겠다며 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를 불러달라는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왠지 꺼림칙하다. 그들조차 나를 그런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

35년간 월급쟁이로 살았으니 내게 부과되는 세금을 한 푼도 속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다. 나는 시민으로서의 임무도 충실히 다 했다. 국가가 원하는 인구정책에 부응하여 자식도 하나만 낳았다.

나는 한 마디로 착한 시민이다.

그런 착한 시민인 나는 가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얌전한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염이 좀 텁수룩하다는 이유로 권력으로부터 내 정보를 확인당해야 한다.

나만 그런가.

우리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하루에도 수백 회씩이나 cctv에 노출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관리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