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외칠수록 젊은이들은 피로하다
권영상
한 때 우리를 열광케한 젊은이들이 있다.
박세리, 최경주, 박찬호, 박태환, 장한나, 박지성..... 처음 이들의 해외 진출과 그들의 놀라운 성공담에 우리나라는 흥분했다. 물론 나도 흥분을 넘어 감격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떻게 갑작스레 세계적인 인물로 저렇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게 놀라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분야에서 세계의 젊은이들을 제치고 보란 듯이 우뚝우뚝 선다.
성공담을 전해오는 이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교포들의 성공담도 만만찮게 방송을 탄다. 입양되어 간 아기가 성장하여 유명대학의 교수가 됐다거나, 이민자가 하원의원이 됐다거가, 엄청난 기업을 일구어 재계의 유력 인물이 됐다는 특집도 나온다. 패션디자이너로, 모델로, 세계적인 콩쿠르를 휩쓴 인물로. 성공담은 많다.
이번엔 가수 싸이의 열풍이 세상을 달구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놀라운 성공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싸이의 열풍이 조금씩 식어갈 쯤 또 한 인물이 등장했다. ‘전설적인 가왕’의 출현이다. 10년만에 신곡을 내놓은 그는 젊고 세련된 그 특유의 사운드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언론의 이 호들갑은 결코 호들갑이 아닌 사실이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이들의 성공과 업적은 우리를 오직 경탄하게 할 뿐이다.
근데 요 며칠 전이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켰다. 모 지상파 방송에서 하는 ‘강연 100°C’가 나왔다. 몇 차례 시청한 적이 있어 알지만 나이먹은 내가 보기엔 유익했다. 주로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뚫고 성공한 사례를 강연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열악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창업주가 됐다거나 클래식 가수가 됐다거나 김밥 사장, 잘 나가는 강사가 됐다는 성공담들이었다. 도저히 재기가 어려운 상황을 딛고 기적적으로 일어선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연실 ‘야, 놀랍다’, ‘기적이야’, ‘어쩌면!’ 그렇게 감탄을 연발했다.
그럴 때다. 방에서 나온 딸아이가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다.
“이 프로 좀 봐봐. 정말 놀랍다!”
나는 딸아이의 발걸음을 잡았다.
딸아이는 지금 20대 후반, 직장에 다니고 있다.
“아빤 내 딸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 거는 안 보이고, 남의 애들 성공담만 눈에 보이지?”
잠깐 보던 딸아이가 시큰둥한 얼굴로 냉장고 쪽으로 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부끄러워 얼른 텔레비전을 껐다.
우리는 오랫동안 언론이 일방적으로 보내주는 성공담에 감탄하며 살았다. 그들의 성공담에 감탄하면 할수록 지금 내 곁에 있는 자녀들은 점점 작아 보이고, 동시에 나도 작아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에 매달려 있다. 마치 이 나라가 성공한 자들을 선발하는 나라인 것처럼 과잉현상을 보인다. 성공한 자들을 부각시킬수록 내 아이들은 점점 피로해지고 사회는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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