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층층나무숲에서 벌이는 왕성한 식욕잔치

권영상 2013. 5. 19. 16:18

 

층층나무숲에서 벌이는 왕성한 식욕잔치

권영상

 

 

 

 

 

꼭 사흘 전이다.

우면산 입새에 있는 층층나무숲에서 너무도 기이한 일을 만났다.

그 숲을 지나는데 싸락눈 내리듯 나무 밑이 소란스러웠다. 이미 산은 초록으로 뒤덮였는데 거기만 싸락눈이 내릴 리 없었다. 혹 여우비라도 내리나 싶어 손바닥을 내밀어 보았다. 그런데 빗방울 대신 뭔가가 손바닥을 가볍게 치고 튕겨난다. 해안가 모래밭에 떨어진 풀씨 한 알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나무 아래로 눈길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바삭바삭 싸락눈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파란 애벌레 똥들이다. 애벌레 똥이 지난해에 쌓인 마른 낙엽들 위로 소낙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땅바닥이 온통 애벌레 똥으로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나무 위를 쳐다봤다.

세상에!

내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층층나무 잎은 다 사라지고 하늘만 뻥 뚫려있다. 이 파란 똥의 주인들이 층층나무 잎을 거의 다 갉아먹고 있었다. 온전한 잎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20여 미터 되는 훤칠한 층층나무가 다 갉아 먹혀 쌀몸뚱이가 되다시피 했다.

고개를 떨어뜨리다가 나무 둥치를 보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흰색 털로 뒤덮인 검정애벌레들이 수도 없이 무덕무덕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어딘가 낮은 곳에서 부화하여 층층나무 새잎을 먹으러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일에 놀라 주변에 선 층층나무를 세어보았다. 줄잡아 쉰 그루는 넘었다. 그 쉰 그루가 하나 같이 애벌레들에게 송두리째 먹히고 있었다.

집에 오는 대로 인터넷에서 그 애벌레를 찾았다.

 

 

 

황다리독나방애벌레.

앞 다리에 황색 띠가 있어 붙여진 검정애벌레다. 4월 중에 부화하며 층층나무 잎만 먹는 단식성 유충. 그들은 층층나무 잎을 모조리 갉아먹거나 또는 갉아먹어도 나무가 죽지 않을 만큼 먹는다고 적혀있다. 그 말이 나를 섬뜩하게 했다.

층층나무의 빠른 성장과 햇빛 독식을 막는 장치로 황다리독나방애벌레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애벌레의 죽지 않을 만큼 먹어치우는 행위는 층층나무의 폭력 행사를 절묘하게 막아내는 생태계 현상이라는 거다. 이들은 층층나무 잎을 먹고 여름철에 나방이 되어 한번에 3,40개의 알을 낳는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의 일이 떠올랐다. 20여 미터 높이의 층층나무 초록 숲에 흰 나비들이 군무를 하듯 날고 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수천 마리였다. 그렇게 높은 곳에 나비가 날아올라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환상적이네.”

그때 나는 그랬다.

초록 나무숲 우듬지에 하얀 색 나비 떼라니!

그 신비한 현상에 나는 놀랐다. 그러면서도 석연찮은 느낌이 있었다. 꽃도 없는 나무숲에 나비가 모여 있다는 게 좀 야릇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나비가 아니었다.

층층나무 밑에 들어서자, 나무줄기에서 이제 막 우화하는 놈들이 있었다. 몸집이 둔탁하게 생긴 나방이었다. 두 날개가 부메랑을 닮았다. 내 손에서 날아간 것이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오는 부메랑.

 

 

 

오늘 산을 오르던 나는 그 층층나무 숲 앞에서 숨을 딱 멈추고 섰다. 주변의 벚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나무, 일본목련 등은 한창 초록 잎을 피우고 있는데 층층나무들만은 겨울처럼 쌀몸뚱이로 서 있다. 나무가 저렇게 된 건 엊그제 본 그 황다리독나방애벌레들 짓이다.

층층나무 숲안으로 받히 들어섰다.

눈을 씻고 보아도 초록점 하나 남긴 데 없이 송두리째 나뭇잎을 갉아먹었다. 갉아먹어도 갉아먹어도 어지간해야 하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읽은 ‘죽지 않을 만큼 갉아먹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기엔 그 죽지 않을 만큼의 상태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쉰 그루가 넘는 나무에 나뭇잎 한 장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잎줄기마저 흔적 없이 모조리 먹어치웠다. 더는 먹을 게 없어 그런지 죽은 애벌레들이 여기저기 나뭇가지에서 뚝뚝 떨어졌다. 마치 흉가를 보는 듯이 섬뜩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무 둥치엔 욕망을 쫓는 인간들처럼 황다리독나방애벌레들이 쉬지 않고 굼실굼실 떼 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배불리 먹었든가 아니면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애벌레들도 많았다. 그들은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으려고 부딪히고, 뒤엉켜 싸우고, 밟고 밟히면서 오르거나 내려오고 있었다.

“올라간대도 먹을 거라곤 없어!”

누군가 그렇게 소리쳐주기라도 한다면 올라가는 애벌레들이 돌아설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해주는 애벌레가 없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 말을 들려주어도 누구 하나 그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든가.

 

 

 

 

한 나무만이 아니다. 쉰 그루의 나무에 달라붙은 애벌레들이 그렇게 몸살을 치듯 싸우고 있었다. 암만 발버둥 치듯 싸우며 올라가봐야 갉아먹을 초록점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을지 모른다.

층층나무숲을 이렇게 황폐화시킨 이들은 누구인가. 한 입이라도 먼저 가로채어 먹겠다고 올라가 잎을 요절내고 내려오는 이 애벌레들이다. 그리고 이 대열에 동참한 그들 모두다.

누가 보아도 한정된 양식에 비해 개체 수가 너무 많다. 작년 여름에 보았던 그 수천 마리의 나방들이 낳아놓은 알이 일시에 유충이 되어 단 시일 안에 왕성하게 먹어치운 식욕이 이런 참혹한 비극을 만들었지 싶다. 왕성한 식욕 잔치의 종말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 숲에는 남아있는 유충들이 먹을 수 있는 잎이 완전히 바닥났다. 저들이 즐긴 식욕의 잔치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저들에게 굶주림으로 돌아왔다.

층층나무 주위에 벚나무, 참나무, 팥배나무, 등나무 등은 여름을 구가하며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황다리독나방애벌레들은 그 나뭇잎들을 먹을 수 없다. 그들의 운명은 단식성에 있다. 불행하게도 층층나무 잎 이외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층층나무 잎을 다 먹어치우면 나머지 누군가는 굶어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애벌레들은 몰랐을까. 그걸 모를 리 없다. 어쩌면 그 엄혹한 현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온이 높아지자 더 빨리 깨어나 남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더 많이 먹어치웠을 것이다. 그건 본능이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왕성한 본능 때문에 지금 나무둥치를 타고 오르는 애벌레들은 어느 지점에서 굶주리다가 죽어야 한다.

 

 

 

이 뻔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애벌레들은 혹시나 하는 행운을 찾으러 나무를 타고 오른다. 그들이 타고 오르는 나무 밑으로 죽은 애벌레들의 시신이 뚝뚝 떨어진다. 나무를 타고 오른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고 돌아내려온다한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너무도 절박한 게 바로 이들의 현실이다.

 

 

 

그때, 이땅에 사는 우리들의 탐욕이 거기에 보였다. 바닥이 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화석 연료를 채굴하고, 화학비료와 독한 살충제를 뿌려가며 대지를 착취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 곡물을 생산하는 다국적기업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먹여가며 돈놀이를 하는 목축업자들과 그들이 가공한 육식을 즐기는 우리들의 왕성한 식욕........

애벌레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같아 씁쓸했다.

좀 건강해지자고 산을 찾아 오르는 이 일도 못된 욕심같이 느껴진다. 내가 좋자고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산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려니 더 이상 산을 오르고 싶지 않아 그냥 돌아섰다.

 

 

층층나무 숲을 돌아 나오며 보니 길바닥에 밟혀죽은 애벌레들이 넘쳐난다. 그들 속에는 아직도 살아남아 그 현장으로부터 멀리멀리 벗어나려는 애벌레들도 있다. 그들은 기를 쓰고 그곳을 벗어나려할 것이다. 그리고는 어딘가 안전한 곳에서 목숨을 보전하며 다시 나방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기어 나온 이들 애벌레들은 누구인가.

상승하는 기온을 민감하게 느끼고 일찍 깨어난 자들이거나, 탐욕스레 층층나무 잎을 독식한 자들이거나,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힘센 자들, 아니면 본능 이상의 생존의 요령을 터득한 자들일 것이다.

 

 

 

“행운은 강자들에게만 오는 법.”

“남을 배려하라고? 웃기는 소리 그만 해.”

“우리는 지금 지옥에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천국으로 가고 있는 중.”

“살아남은 자들에게 찬란한 축복이 내리길!”

 

층층나무 숲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면서 애벌레들은 그들의 살아있음을 즐거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주변 향나무며 시멘트 기둥이며 아카시나무에 안전하게 올라가 앉아 그들이 말한 지옥을 바라보는 애벌레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저 황폐한 층층나무 숲을 바라보며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살아남은 자만이 날개를 가질 수 있다며 기쁨에 들떠 있는 건 아닐까. 수없이 죽어간 동료들의 주검 곁을 지나오며 어쩌면 더욱 더 제 목숨의 고귀함을 강화시킨 건 아닐까.

 

 

 

천천히 숲을 빠져나오며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봤다. 층층나무 숲이 죽음의 함정처럼 뻥 뚫려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을 믿는 생물학자들은 층층나무가 저렇게 피폐해지고도 여름쯤이면 새 순을 피워 회생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지 모른다. 그건 마치 지구가 황폐화 되면 또 다른 행성으로 인류가 이주하면 그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성적인 과학자들의 언사와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오늘 내 마음엔 그들의 그런 너무나 과학자적인 말이 너무도 비윤리적으로 들린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점심을 굶어야겠다.

내가 한 끼 건너뛰는 이 일이 지구를 살리는데 뭔 도움이 될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