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사에서 울려오는 저녁 범종소리
권영상
점심 수저를 놓은 뒤입니다.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아파트 관리소 뒤편 작은 골목길에 연등이 보입니다. 붉은 연등을 보려니 오래도록 잊고 살아온 장경사가 떠오릅니다.
나는 배낭에 물 한 병을 넣고 차에 올라 남한산성을 향했습니다. 산성 아래에 이르러 남문을 향하여 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숲길로 차를 몰았습니다. 참나무와 아카시나무 팥배나무가 한창 어우러진 길 사이사이로 철쭉이 흐드러졌습니다.
성안에 있는 로타리를 지나 하남시로 나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개원사 길이 나오지요. 거기서 한 200여미터 더 가면 산성 동문 못 미처에서 좌회전 길이 나옵니다. 그 가파른 산길을 올라 구비구비 참나무 산구비길을 돌아가면 숲 사이로 장경사 일주문이 보입니다.
오래 전, 여기 장경사 절마당에서 고즈넉히 늙어가는 은행나무가 눈물겹도록 노랗게 몸을 익히던 날이 있었지요. 그날에 나는 여기 이 절의 한 쪽 빈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이 고적한 절 안에는 외로이 선 탑과 요사채 앞 빨랫줄에 널린 흰 무명 빨래와 장독대 뒤의 짓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과 낮달 한 조각과 가을 오후의 5시와 그리고 도시를 피해 잠시 도적처럼 들어와 선 내가 있었지요.
우리는 좀은 멀찍한 거리를 두고 앉아 서로 말없이 바라보기나 했는데 그건 그 때 우리들의 아름다운 대화였습니다. 그 대화가 얼마나 깊고 다정했는지 가을 오후가 추워지고, 산그림자가 무겁게 내려올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때 나는 나무의자에 내려놓은 엉덩이가 시려워 그 절 무인자판기에서 커피를 빼어 먹으며 그 길고긴 가을날의 대화를 즐겼습니다. 그 기억이 새롭습니다.
살수록 문득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승의 이 자리에 와 목숨을 부지해 가는 일이 참 궁금하지요. 아득히 먼 땅에서 태어나 산을 넘고 강줄기를 따라 여기에 와 사는 역사를 더듬노라면 봄날이 짧습니다. 나는 무슨 연유로 아내를 만나 살을 부비며 살고, 딸아이는 또 어떤 인연으로 우리들의 뜨거운 가랑이 사이에서 뚝 떨어져 나왔는지.........
예전에는 이런 번거로운 물음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 쉽게 알아지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모르겠는 것이 넓은 우주 가운데에 떨어진 나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를 알기 위해 나의 과거를 파헤치자니 과거가 깊고, 미래를 추궁해 보려니 아직 살아본 적 없는 세월이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과거고 미래고 다 무 자르듯이 툭 잘라내고 지금 내 앞에 서있는 나만 잘 보면 진짜 내가 보일 듯 싶습니다.
절마당에 갓 핀 5월의 작약꽃을 봅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저 모습이 나라면 저 자줏빛 작약꽃이 나로군요. 내가 작약꽃처럼 곱고 탐스럽고 아름답네요. 부유한 공단 한 자락을 몸에 두른 듯 의젓하고, 품격있고, 싱그럽네요. 그 아래 햇빛에 드리워진 작약꽃의 붉은 그림자를 보아요. 음덕같은 그림자에서 은은한 향기가 우러나옵니다. 그것도 지금의 나입니다. 내가 그렇게 향기롭네요. 과거에는 내가 도둑일지라도 지금 작약꽃 앞에서 그윽한 눈으로 작약을 보는 나는 분명 그렇습니다. 그래요. 향기로워요. 내가 지금 향기롭네요.
“쨍그렁! 쨍그렁!”
장경사 대웅전 처마에서 때맞추어 풍경이 웁니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저 맑은 소리 또한 나이네요. 나는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골짝물 소리보다 더 맑고, 봄별 움직이는 소리보다 더 맑고, 나는 휘파람새 울음소리보다 더 깨끗하고 영롱합니다. 풍경에서 울려나는 소리가 나의 소리이니까 나는 지금 당연히 얼음처럼 맑습니다.
세속에서 내 입은 흙탕물 같이 거칠고 탁한 소리를 냈지요. 욕심에 가득찬 말만을 염치없이 쏟아져 냈지요. 그때 내 소리는 요란했고, 내 입에서 나오던 말소리는 어두운 들판을 달리는 짐승의 비명과 다를 바 없이 음험했지요. 그런데 그 소리들은 지금 나의 소리가 아닙니다. 과거의 소리일 뿐입니다. 내가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니듯 과거의 내 입에서 나온 소
리 또한 지금 나의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 저 풍경소리를 듣는 내 귀와 말소리는 이슬처럼 맑디맑습니다. 이게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숨결의 소리입니다.
장경사 작약꽃에서 나는 지금의 나를 보고 갑니다.
바람이 산새의 깃털을 굴려가듯 내가 나를 이끌고 천천히 절마당을 걸어나갑니다.
절 뒤로 오르는 비탈길에 들어섭니다. 초록의 수림들이 문을 열듯 닫아놓았던 숲을 엽니다. 나는 그 초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섭니다. 산 비탈길은 산성을 따라 올라가는 또 다른 길입니다.
드문드문 보이던 철쭉꽃이 오를수록 떼지어 나타납니다. 소백산 철쭉이 한창 핀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곳 산성에도 한창입니다. 남한산성에서 보는 철쭉은 여느 산의 철쭉과 다릅니다. 다른 산록의 철쭉은 철쭉이긴 하되 꽃의 그윽함이 없습니다. 꽃이 그윽함을 잃으면 꽃이 아니지요. 또한 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분홍이라 꽃다운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도심의 아파트에 기성품처럼 심어져 있는 개량 철쭉은 생각이 없는 계집아이처럼 요란합니다. 야, 예쁘다! 한번 그러고 나면 다시는 보기 싫을 만큼 경박합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철쭉은 그와는 엄연하게 격이 다릅니다. 떡갈나무며 굴참나무 숲 아래에 선 철쭉은 흰색에 가까운 은은한 분홍입니다. 도무지 천박하지 않은 색깔입니다. 꽃의 크기도 다른 어느 곳의 철쭉 꽃잎보다 크고 두텁고 기품있습니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분홍은 은은한 미색으로 바뀝니다. 마치 백색 공단에 하얀 달빛 우련히 얼비치는 그런 우아함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처음 철쭉꽃을 보았을 때 떠오른 느낌이 있습니다. 종가 며느리의 의젓함이 치마저고리에 밴 부유한 자태. 그것이었습니다.
참나무들이 갓 피워낸 이파리의 연둣빛 그늘과 희고 미색이 도는 철쭉은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그건 꽃이라기 보다 귀태가 나는 한 무리의 여인들입니다. 길 위에 여기저기 떨어져 누운 꽃마저도 앉은 자리를 바꾸었을 뿐 철쭉의 자태 그대로입니다.
그 철쭉꽃 흐드러지게 핀 참나무 숲길을 오르다가 잠시 숨을 고릅니다. 가파른 산비탈 아래에서 장경사 요사채의 밥그릇 씻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옵니다.
“여주야! 차 왔나 좀 나가봐라.”
그 절 공양주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대웅전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이 벌떡 일어나 일주문 밖을 내다보실 것 같습니다. 어찌나 목소리가 다정한지 고향에서 듣던 형수님 목소리 같습니다. 이런 좋은 봄날이면 부처님도 다리에 좀이 쑤시겠지요. 이천오백 년을 가부좌를 틀고 한결같이 앉아 계셨으니 고되실 테지요. 그런데 모를 일이네요. 달빛 좋은 날이면 처마 끝 보름달을 보러 슬그머니 문밖 출입을 하시는지, 밤바람 풍경소리에 성큼 법당 마루에 내려와 발장단 춤을 추시다가 슬며시 제 자리에 가 앉으시는지.......
발길을 떼려는데 살모사 한 놈이 막 오솔길을 건넙니다. 긴 겨울을 건강히 잘 넘긴 살모사의 귀에 밥그릇 씻는 소리가 들린 모양입니다. 절간 쪽 산비탈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그를 그쪽으로 내려보내고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 모서리에 별처럼 파랗게 비치는 빛이 있습니다. 나는 살모사 지나간 흙자국 앞에 무릎을 꿇듯이 앉았습니다. 별보다 더 예쁜 보랏빛 야생화입니다. 빛깔은 용담초를 닮았고, 모양은 오동나무꽃을 닮은 종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크기는 앙증맞도록 작습니다. 보라라지만 파랑에 가깝습니다.
나는 혹 누가 밟고 지날까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았습니다. 그럴 때에 참 우연히도 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 낯선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이 꽃을 보여주며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 대신 꽃을 찍어 즉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잠시 후, 그 대답이 올라왔습니다.
“구슬봉이이랍니다.”
젊은이가 내게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여줍니다. 용담과의 봄구슬봉이이네요. 참 소박하면서 우리 땅의 냄새가 물씬나는 정든 이름입니다. 구슬봉이, 우리 땅을 지키는 야생화의 빛깔과 이름이 이렇도록 곱고 예쁩니다.
그 일로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였는데 그는 야생화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이었습니다. 슈퍼마킷을 운영하시는 분으로 안동권씨 복야공파의 젊은이였음을 또 알았습니다.
3,4센티만 한 구슬봉이가 하필 산을 오르는 이들의 발길에 채일 길옆에 자리를 잡고 피었을까요? 어쩌면 꽃 피어 있을 줄을 전혀 예측 못할 곳을 삶의 터전으로 택한 듯 싶군요. 우후죽순처럼 꽃 피는 풀숲이 아니라, 꽃 있음직한 들판이 아니라 먼지 풍기는 이 붉은 흙길이 오히려 안전했던가 봅니다.
살모사 한 마리 내게, 모르고 살면 또 그뿐이었을 구슬봉이를 보여주러 오죽히나 먼먼 세월을 휘돌다가 여기로 온 모양입니다. 남한산성의 한 그늘에서 내가 봄을 즐기듯 그도 그의 인연대로 산성의 한 자리를 건강히 잘 지켜주길.
나는 헛기침 두어 번으로 구슬봉이와 작별을 하고 다시 오솔길을 올랐습니다. 길고도 그윽한 남한산 철쭉길을 다 오르자, 이번에는 병꽃이 또 지천입니다. 애기나물과 둥글레가 지천이고, 각시붓꽃이 요염하게 핍니다.
동장대를 지나고 북문을 코 앞에 두고 나는 동행안 젊은이와 소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배낭 속의 물 한 모금을 나누어 마신 뒤 그 젊은이와 헤어졌습니다. 그이는 마라톤대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고, 또 백두대간도 종주한 이었습니다. 슈퍼마킷이 돈을 버는 업인데 그 일을 두고 야생화를 보러 틈을 내어 산을 오르는 그의 사는 법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오던 길과 다른 길을 찾던 중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산성은 공사중이었고, 또 그늘 길만 골라 가다보니 내가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월요일, 산에서 길을 잃으니 길을 물을 사람이 없네요. 인적이 없는 산길을 외로히 나무들과 함께 걸어 내려오다가 나물을 캐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이 가르쳐주는 대로 길을 다시 찾았습니다.
처음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건 옥정사 옛터에서 청나라 군대를 맞아 헌신을 한 승군의 자취를 보려 했었는데, 그도 저도 다 긁러버렸습니다. 남한산관리사무소를 앞에 두고 다시 벌봉으로 가는 길을 올랐습니다. 산을 두 번 오르는 격이었습니다. 골짝물에 손을 씻고, 등산화를 풀고 발도 씻고, 그러며 벌봉 가는 암성 앞에 섰을 때입니다.
저 아래 장경사의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울려옵니다. 산사의 범종소리는 참 장엄합니다. 그 단순한 형체의 종에서 어떻게 그리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가 날까요. 이 범종소리를 들으려고 내가 길을 잃었나 봅니다. 그 안동권씨 복야공파 젊은이가 내 갈 길의 시간을 늦추어 여기에 알맞게 대어주었구나 했습니다.
종소리가 내 가슴의 빈 자리를 울려줍니다. 세속 욕망으로 가득차 아무 것도 받아들일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닳고 닳은 내 낡은 몸에도 종소리 들어설 자리는 있나 봅니다.
나는 산성의 담장에 기대어 성밖 오월 나무의 바다를 바라봅니다. 인류가 많듯이 참 나무도 많습니다. 산 또한 큽니다. 그 큰 산 너머에 또 산이 있고, 그 산 너머에 겹겹히 산이 멈추어 서 있습니다. 어느 방향을 향해 바삐 달려가던 산줄기들인지 오후의 범종소리에 잠시 멈추어 귀를 기울입니다.
서쪽으로 가는 해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이나 산의 활동은 아까와 달리 차분한 느낌입니다. 산성을 따라 내려오며 욕심없이 그 범종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느라 굳었던 내 몸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장경사의 작약꽃도 이 범종소리를 물론 들었겠지요. 지금은 또 어떤 사람이 나처럼 그 작약꽃 앞에 서서 흔들리는 자신을 찾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작약꽃 다 지기 전에 거울을 보듯 자신을 찾아내기를 빕니다.
장경사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 시동을 겁니다.
오늘 하루 나를 거쳐간 철쭉이며, 각시붓꽃이며, 살모사며, 구슬봉이이며, 안동권씨 복야공파의 한 청년이며, 이 여유로운 시간을 주신 오월의 맑은 대기, 그 모두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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