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포항 도착하려면 일 년은 걸릴 겁니다
권영상
한가한 틈을 타 차를 몰아 주말농장에 갔다. 지난 주에 심어놓은 고추며 토마토가 걱정이었다. 그간 기온이 들쭉날쭉 오르내렸다. 심을 때만 해도 20도를 오르내렸는데, 그 이튿날부터 줄곧 비가 내렸고, 추웠다. 2주 전에 심어놓은 상추는 또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양재역을 끼고 강남대로를 가다가 청계산로 방향으로 우회전을 한다. 그쯤서부터 오른 쪽은 청계산이고, 왼쪽은 능인산이다.
주말농장은 능인산 자락에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호미를 찾아들었다. 지난 주 내내 비가 내린 탓인지 모종들이 탄탄하게 잘 섰다. 한 주일만에 찾아와 놓고도 이들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아 두어 차례 물을 주다가 눈 앞의 능인산을 쳐다봤다.
가파르다. 가파른 능인산에 봄이 흠뻑 와 있다. 온통 연둣빛다. 연둣빛 산기슭에 복사꽃이 피고 있다. 왠지 그 복사꽃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이곳과는 딴 판인 황홀한 세상이 은밀하게 숨어있을 것만 같다.
나는 물조리개며 호미를 던져두고 밭을 나왔다. 산 밑에 물 흐르는 도랑이 있다. 이게 마치 이쪽 사람의 세상과 저쪽 복사꽃 피는 연둣빛 세상을 갈라놓은 경계인 듯 싶다. 나는 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가랑이를 크게 벌리고 몸을 날렸다.
쿵, 하고 건너편 산기슭 둑에 내가 내려섰다.
산기슭은 이쪽과 달리 분주하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새순들이 일시에 올라온다. 구름처럼 무덕무덕 피는 조팝꽃 숲을 헤쳐 토끼나 다녔음직한 길을 따라 올랐다. 나무가 없는 마른 땅은 온통 제비꽃이다. 붓꽃도 보라 꽃빛을 쏘며 사는 일에 한창이다. 먼데서 보면 지금 산은 연둣빛이지만 가까이 들어와 보니 발길 앞은 보라요, 분홍이요, 노랑이다.
한참만에 사람이 다녔음직한 길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참나무잎 푸르게 피는 숲이다. 깊다. 참나무류와 소나무가 섞여 크는데 연둣빛과 짙한 초록이 만드는 빛과 그늘 때문인지 왠지 그윽하다 못해 신비하다. 아름드리 나무숲 사이로 길은 나 있지만 인적이 전혀 없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참꽃 귀신에 이끌려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 했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내가 지금 연둣빛 봄에 이끌려 그렇게 오르고 있었다.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산이 깊어졌을 때다.
모롱이를 하나 도는데 까마귀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난다.
문득 고개를 든 내 앞에 문이 열리듯 너무도 뜻밖의 풍경이 열린다. 무덤들이다. 빙 둘러가며 언덕진 비탈이 다 무덤이다. 무덤들이 마치 은둔한 저승 사람들처럼 갑작스럽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제압하듯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섬뜩한 생각에 발을 멈추었다. 훅, 소름이 끼쳤다. 이 가파르고 깊숙한 산중에 웬 무덤들인가. 10여기가 넘는 무덤들이다. 나를 더욱 섬찟하게 하는 건 무덤들 앞에 드문드문 선 검은 비석들과 무덤 둘레를 둘러싸고 있는 검정 얼룩의 큼직큼직한 바위들이다. 그들은 저승 사자들처럼 우뚝우뚝 서서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가 저승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보기에 거기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사자들의 땅이었다. 아니 산 자의 발걸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위협적 형태의 공간이었다. 잠시만 눈을 돌렸다간 저승사자에게 잡혀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시선을 잃지 않고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발 앞에 골짝물 한 오라기 죄죄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나는 물줄기를 넘어 서려던 발을 거두어 들였다. 한번 들어섰다간 다시는 돌아나오지 못 할 곳 같은 으스스한 풍경이었다.
그때 내 기분은 분명 그랬다.
인적조차 없는 연둣빛 숲과 검정 비림들과 무덤들, 그리고 야릇하고 수상쩍은 봄날의 빛과 그늘. 나는 마음을 다져먹고 저쯤 서 있는 사자들의 비문을 읽었다.
남평문씨 가문의 무덤들이다.
그 ‘남평문씨’ 라는 이승의 말에 힘입어 나는 그 경계 안으로 들어섰다. 하늘이 펀하게 들어온다. 이쪽 내가 서 있는 세상과 저쪽 전혀 보이지 않는 우주를 연결해 본다. 그러다가 우주의 어느 공간, 화성을 생각한다.
며칠 전이다.
화성에 올라가 정착할 이주자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봤다.
미국 항공우주국에 다니던 한 엔지니어가 계획한 프로젝트 ‘마스 원’의 내용은 이렇다. 2016년과 2021년 두 차례 로봇 화물위성을 화성으로 보내 정착촌을 건설할 전초기지를 만든다. 그 뒤 2023년에는 8년간 훈련시킨 첫 이주자 4명을 보낸다. 지난해 말부터 이주자 신청을 받고 있다는데 벌써 신청자가 만 명을 넘어섰단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건 이들은 한번 화성에 가면 다시는 지구로 귀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까.
살아서는 갈 수 있으되 영영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 저승이 그렇지 않을까. 한번 그 선을 넘으면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 대경실색할 일이다.
우주라는 실체는 이제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지구와 같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두렵기는 해도 거기가 어디든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이런 공간은 지구 바깥의 우주만이 아니다. 20세기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사이버 공간이다. 사이버 공간은 인간이 만든 수많은 집적물을 그 안에 저장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형태로 생성되고 소멸한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그 사이버 공간에 유기체인 생명을 이전시킬 수는 없을까. 혹시 바이러스도 처음에는 그런 좋은 시도에서 만들어진 사이버 생명이 아닐까.
천문학적 돈을 들여 행성에 인간을 이주시키는 것보다 사이버 속의 공간은 우선 여행경비가 적고, 안전하다. 더욱이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저렴하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또 하나의 미답의 공간이 있다. 저승이라는 어둠의 세계다. 그곳은 정말 관념만의 세계일까. 과학이 양방향으로의 왕래를 가능하게 할 수는 없을까.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으로 천천히 그 사자들의 땅을 지났다.
할미꽃, 제비꽃, 붓꽃, 둥글레꽃이 그곳에서도 요란히 핀다. 그곳을 지나 방향도 모르고, 인적도 없는 길을 올랐다. 산구비를 돌자, 이번에는 죽은 나무들의 골짜기가 나타난다. 산불이 거쳐간 모양이다. 으스스하다. 백만 년 전의 원시의 공간이거나 아니면 우주의 어느 낯선 행성에 내가 와 있는 느낌이다. 나는 시커멓게 죽은 나무숲이 무서워 피어나는 초록숲으로 시선을 돌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벨소리가 1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 이쪽 행성으로 날아오는 발신음 같았다. 나는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휴대폰을 열었다.
“선생님, 다다음 주 금요일 포항 좀 와 주실 수 없을까예?”
포항에 사는 여류 시인이다.
문학모임이 있는데 좀 와 달라는 거다.
“여기서 포항까지 가려면 한 일 년 걸릴 겁니다.”
내 입에서 불쑥 그런 말이 나왔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한 행성에 와 있는 착각에 빠졌다. 여기서 우주배를 띄워 지구로 돌아가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 것만 같다. 그때까지 포항에 살고 있는 그들은 나를 기다려줄까.
“거기 어딘 데 그리 엄살이십니꺼?”
좀전의 여자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또 들려온다.
“제가 자세히 말씀드려도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천왕성이 가깝게 바라보이는 작은 별에 와 있어요.”
나는 불에 탄 고사목들을 바라보며 통신을 했다.
“아, 그러시믄 제가 살고 있는 별도 보이겠네예? 저도 그쯤에 있어요. 이쪽 동쪽으로 토끼꽁지 같이 작은 장미별 하나 안 보입니꺼?”
그러며 웃는다.
“보입니데이.”
나도 그러며 웃었다.
“그 쪽으로 KTX 타고 오심 뎁니다.”
“알겠소이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며 천천히 별의 분화구를 오르듯 빤히 보이는 능선을 향해 올랐다.
어린왕자라도 만날 것 같은 고갯마루에서 이정표를 만났다.
오른 쪽은 ‘홍씨마을’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본 마을’ 길이다. 이제야 알았다. 내가 올라온 마을이 청룡마을이다. 나는 청룡의 등허리를 타고 여길 올라왔다. 그러고 보면 산허리에서 만난 무덤들은 청룡의 등허리를 타고 남평 문씨의 망자들이 천계로 오르려는 염원이 담겨진 공간이 아니었을까.
물끄러미 내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다.
밭에 던져놓고 온 호밋자루와 물조리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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