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이효리의 미스코리아, 그 가사 속에 담긴 우수

권영상 2013. 5. 8. 11:55

 

이효리의 미스코리아, 그 가사 속에 담긴 우수

 

꿈과 부를 쫓느라 지친 외로운 ‘아가씨’들에게

권영상

 

 

 

 

 

 

텔레비전이 중계해 주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가끔 본 적이 있다. 주로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보지 않았나 싶다.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그곳 텔레비전을 통해 본 기억이 난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미녀들이 무대에 나와 허리에 한 쪽 손을 살며시 얹고 쓱, 눈웃음을 치고 돌아나가던 모습이 선하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성형외과 의사거나 미용실 관계자, 스포츠신문 편집국장 뭐 이런 분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미모와 재능을 심사대상으로 한다고 했지만 비슷비슷한 미인들 중에서 진선미를 뽑아내는 게 신통해 보였다.

 

 

그런 대회가 있고나면 으레 심사 과정에 금품이 오갔느니, 로비가 있었느니, 부정 심사였으니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이 대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그룹의 목소리도 높았다. 여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주의의 극치라며 생방송 중계를 비난했다.

그렇기는 해도 늘씬한 미혼 여성들이라면 미스코리아 대회를 그냥 넘길 수 없을 테다. 누군들 머리에 에머럴드관을 쓰고, 은빛 홀을 비스듬히 든 ‘진선미’에 선발된 미인이 부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왜 비용도 많이 들고 온갖 스캔들이 난무하는 그 일에 불나방처럼 덤벼들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한 것 같다. 단번에 신데렐라의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 미스코리아 출신들은 대중들이 선망하는 연예계로 논스톱 진출하거나 방송국 아나운서로, 또는 이름있는 부자들의 며느리가 되거나 교포 2세들과 결혼한다. ‘미스 코리아’는 이들이 평생 누리며 살게 되는 화려한 배경이며 성공과 출세의 확실한 통로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는 먹고사는 일에 바빠 잘난 미녀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70년대 후반을 지나오면서 부가 축적되고 신흥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상품화가 진행된 셈이다. 동시에 배부르기 시작한 남성들의 여성을 보는 수준도 대회가 거듭될수록 날로 날로 높아졌다.

 

 

모름지기 이때로 부터 여성들은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꼭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 미인 대회들이 여성들을 자극했다. 젊은 여성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코를 세우고, 다리를 바로 펴기 위해 성형외과를 들락였다. 기업들은 첫눈에 호감 가는 여성을 채용하고, 남성들은 여성을 ‘얼굴’부터 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 역시 몸매가 늘씬하느냐 아니냐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여성인가 아닌가로 잘못 치부하는 경향마저 생겨났다. 이런 문제 많은 사회와 남성과 여성들이 서로 뒤엉켜서 미혼 여성들을 피로의 수렁에 빠뜨려 여기까지 왔다.

 

 

지금이야말로 미혼 여성들이 지쳐가고 있는 시점이다.

이 정점에서 가수 이효리씨의 신곡 ‘미스코리아’가 발표됐다. 발표되자마자 국내 음원차트마다 1위를 석권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무에 기대어 서서 울고 있는 한 여자와 그녀의 등을 도닥이며 위로해주는 또 한 여자. 그 두 여자의 따스한 풍경이 떠오른다. 그는 반복되는 리듬으로 ‘울지마, 네가 최고야.’ 라며 그를 달래고 있다.

노래도 노래지만 손수 썼다는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우리 시대 미혼 여성들이 안고 있는 아픔을 명료하게 적시하고 있다. 가사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왜곡되고 일그러진 사회 속에서 눈물겹게 살고 있는지를 한눈에 읽어낼 수 있다. 그 점에서 가사의 시사점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유리 거울 속 저 예쁜 아가씨

무슨 일 있나요. 지쳐 보여요.

많은 이름에 힘이 드나요.

불안한 미래에 자신 없나요.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예쁜 아가씨’는 지쳐있다. 고치고 또 고쳐놓은 얼굴도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내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다. 잘 나가는 탤런트나 가수나 영화배우의 이미지를 조합한 얼굴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미 나의 꿈을 버리고 그들의 욕망을 산다. 그들의 소비를 따라하느라 카드를 긋고, 그들의 패션을 따라하느라 눈물을 흘리며 또 카드를 긋는다. 그들의 얼굴을 닮기 위해 나는 한없이 비굴하게 산다.

 

하의가 실종된 심찟하도록 긴 다리를 드러내야 하고, 가슴을 풍만하게 부풀려 올려야 한다. 쌍꺼풀 수술은 기본이고, 낮은 코를 높이는 일도 이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런 열풍 뒤에 조용히 흔들리는 우리들의 그늘을 도시의 소비주의는 외면한다.

 

 

“왜 우리나라 여자들 이렇게 다 똑 같아요?”

지난 주 국내에 들어온 제자가 놀랍다는 듯이 내게 따진다. 왜 아랫도리는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모르는 패션이고, 왜 얼굴들은 다 똑 같으냐는 거다. 나도 이제 그 문제에 대한 옳은 답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옳은 답안을 내놓기엔 우리들의 상황이 너무 복잡해졌다. 싫든 좋든 이 일방 통행적인 나라에서 살아내려면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보다 더 멋지게 친구의 얼굴이 만들어지는 순간, 나는 박탈감에 빠진다. 그래서 거울 속 ‘예쁜 아가씨’는 오늘도 지쳐있다.

 

 

자고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진 않아.

Because I'm a Miss Korea

세상에서 제일가는 Girl 이야.

누구나 한 번에 반할 일이야.

Because I'm a Miss Korea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아직도 버릴 수 없는 견고한 여성들의 꿈이다. 그 꿈이 한갓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아니다. 현실이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는 없어졌지만 슈퍼모델이며 엘리트 모델, 레이싱걸 모델은 여전히 새로운 출세의 통로로 발전하고 있다. 그건 마법 같은 자본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자본주의와 대결하여 내가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서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때 나는 당당해진다. 잊고 살았던 내 얼굴을 되찾을 수 있고, 남의 욕망에 휘둘리며 살던 나를 건져낼 수 있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몰개성의 보편주의와 결별할 수 있다.

 

 

I'm a Miss Korea.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여자가 된다. 비록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제일가는 미녀로 뽑히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제일가는 여자가 됐다. 내가 제일가는 여자가 되려면 기성품 같은 보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은밀히 보편주의를 방치한다. 다 똑 같이 코를 세우고, 다 똑 같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다 똑 같이 늘씬하게 가꾼 몸은 이미 개성없는 기성품이 되어 버렸다.

다 똑 같이 손에 든 공짜폰도 이미 기성품이고, 야구 경기에 열광하는 수많은 관중들 속에 들어있는 나도 기성품이다. 그 자리에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열에서 벗어날 때 나는 당당한 Miss Korea가 된다.

 

 

명품가방이 날 빛내 주나요.

예뻐지면 그만 뭐든 할까요?

자고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 그거 중요한가요.

망쳐가는 것도 내 잘못 같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넌, Miss Korea.

 

 

 

명품 가방 하나 구하려고, 명품 가방 가게에서 6개월을 보수 없이 일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누가 우리를 명품에 살고 명품에 죽게 만들고 있을까. 명품은 기성품 문화를 구가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그들과 구별짓기를 바라는 배부른 자에게 바쳐지는 고가의 상품이다.

명품 가방 하나 들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일이 아니다. 내가 그걸 차지했을 때 내 손에 들린 명품은 이미 명품이 아니다. 명품은 더 값비싼 명품으로 저 먼 곳에서 무지개처럼 나를 또 유혹한다. 소비사회는 끝없이 고가의 명품을 만들어 못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우리는 명품이라는 허상을 허겁지겁 따라가다가 언제쯤 나도 모르게 파산하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명품을 쫓아간다. 왜일까? 누군가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고 있는 명품 가방으로, 내가 입고 있는 명품 옷으로, 맨살을 드러내는 곧고 늘씬한 다리를 보고 사람들은 나를 평가한다. 우리는 내게로 날아오는 이런 시선을 의식하며 사느라 예전보다 더 많이 땀 흘려 일하지만 나의 지갑은 갈수록 가난하다.

이게 나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 그늘에서 지금 젊은 미혼 여성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당신은 Miss Korea.

 

 

이 가사를 읽노라면 꿈과 부를 쫓느라 허덕대는 우리 사회의 그늘을 보는 듯해 왠지 쓸쓸하다. 직업도 불안하고, 그래서 결혼도 포기하고, 꿈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아가씨’들에게 가수 이효리는 ‘신기루’ 같은 또 한 사람의 우상이다. 그 우상이 진정 팬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따뜻이 손을 잡아주는 이 노래, ‘미스코리아’가 상처받은 ‘아가씨’들의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당신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