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험
권영상
매형이 교통사고로 한 달 가량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다행히 차도가 좋아 지금은 퇴원을 하여 집에서 몸조리를 하신다.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살아난 것만도 천행이지뭐.”
지난 달 병원에 찾아갔을 때 누님이 그러셨다.
누님은 나보다 백 배 천 배 더 놀라셨겠다.
그 동안 매형도 병원 생활에 지치셨을 거고, 간병을 한 누님도 힘드셨겠다. 음식도 해 나르고, 문병 오는 분들도 맞고. 그 일이 또 좀 힘든가.
나는 누님 사시는 신림동으로 가며 전화를 드렸다. 밖에 나가 점심 식사라도 하자고. 내 말에 누님이 ‘알았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뭘 먹으면 좋을까 그 생각을 했다. 칼국수가 좋을까 아니면 담백한 설렁탕이 좋을까. 나는 내 식성대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누님댁에 들어섰다.
그런데 누님이 음식준비에 한창이다.
“퇴직하고 혼자 밥 챙겨먹는 네가 걱정돼 추어탕 끓이고 있다.”
바깥에 나가 먹자는데 왜 이러냐고 묻는 내게 누님이 손사래를 치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얼굴 들 면목이 없어졌다.
나는 퇴원한 매형에게 담백한 칼국수니 설렁탕이니 뭐 그 정도를 생각을 했는데, 누님은 오히려 멀쩡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누님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위다. 막내인 나는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려도 어린 시절 누님을 막 대했다. 그런데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이 누님에게서 가끔 어머니를 본다는 점이다.
나는 뜻밖에도 누님이 차려주신 추어탕으로 점심을 잘 먹었다.
그러고 나오려는데 집에 가 식구들과 먹으라며 추어탕 한 그릇을 단단한 용기에 담아 주신다. 나는 몇 번이나 사양했다. 뭐 이런 걸 다 들고 다니겠느냐며.
그런다고 물러설 누님이 아니다. 누님은 결국 종이가방에 그걸 담아 안고 버스 타는 데까지 따라와 나를 태워주셨다.
나는 누님과 작별하고 버스에 올랐다.
의자마다 사람들이 쭉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앞쪽에 자리가 생겨 요행히 앉았다.
버스가 떠나고 다시 전철역 근방에서 내릴 쯤 나는 내 곁에 놓아둔 종이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뿔싸! 종이가방이 뜨거운 추어탕 열기에 밑이 약해진 모양이다. 가방 밑이 터지면서 추어탕 그릇이 툭 떨어졌다. 추어탕 한 그릇만 넣었댔는데 파김치 통이며 도토리묵 한 봉지, 몸에 좋다고 먹으라던 가시오가피 어린 잎 넣은 봉지까지 투두둑 쏟아져나왔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그것들을 주섬주섬 밑 터진 종이가방에 되는 대로 담아 안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뒷켠에 앉은 젊은 처녀들이며, 아주머니들이 다 보았을 걸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낮 버스에, 그것도 사내가 든 종이 가방 속에서 그런 것들이 불쑥 쏟아져 나오다니.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나는 누님을 탓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안고 있는 추어탕 때문인지 무릎이 점점 뜨거웠다. 그렇다고 밑이 터진 가방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쳤다. 내 곁에 다가온 여자분의 손이 검정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린 채 종이가방을 통째 비닐봉투 속에 밀어넣고 의자 밑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숨죽여 창밖만 내다보았다.
버스가 한 정거장을 그렇게 갔다.
나는 얼굴을 감추고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는 대로 가게에 들러 큼직한 종이가방부터 샀다.
전철을 갈아타고 돌아오는 내내 그분을 생각했다.
내게 구깃구깃 구겨진 검정 비닐봉투를 말없이 건네주던 그분은 어떤 분일까. 얼핏 어깨 너머로 본 그분의 손은 마디가 굵었고, 그분의 귀밑 머리칼은 부스스했다. 예전의 내 어머니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왜 나는 그 순간 고맙다는 말도 못 해 드렸는지.....
집에 돌아오는 대로 누님께 전화로 그 이야기를 했다.
다 듣고 난 누님이 ‘좋은 경험을 했구나’ 그러신다.
그런 그 목소리가 또 예전의 어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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