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커넥터, 마사코 아줌마

권영상 2013. 5. 26. 15:30

커넥터, 마사코 아줌마

권영상

 

 

 

 

 

고향에 내려가 바다를 보고 장조카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듬성듬성 소나무 가로수를 심은 길 주변에 감자밭들이 푸르게 펼쳐져 있다. 그 실하게 올라오는 감자순을 구경하는 내 곁에 할머니 한분이 와 섰다.

“뭘 그렇게 보시우.”

일흔이 넘어 보이는 분이다.

헐렁한 불라우스에 챙이 있는 모자를 쓰셨다.

“감자밭 구경을 좀 하느라.......”

나는 그냥 지나가는 분쯤으로 알고 대답했다. 내가 당신이 누구인 줄 모르는 기미를 채자, 그분이 다시 내게 알근 체를 했다.

“서울서 교편을 잡으신다는 막네이지요?”

저만큼 있는 고향 집을 가리키며 그분이 웃으셨다.

그제야 그분이 누구인 줄 알았다.

 

 

 

“아, 마사코 아주머니?”

“야. 지가 그......”

그때에야 나는 제대로 된 인사를 드렸다.

마사코, 마사코, 실은 이름만 들어 안다. 솔직히 말하면 때로 잠깐씩 인사를 드리긴 했다. 그랬어도 내가 고향을 떠난 뒤에 일이 년에 한번씩 뵈는 분이라 얼굴이 익지 않았다.

“환경을 공부한다는 따님은 졸업했나요?”

일흔의 마사코 아주머니가 대뜸 그러셨다.

“아 네. 벌써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또 한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지는 이제 여기 안 살아요. 요기 경포 너머 순개에 사는데 강문으로 해서 가려고.”

나는 그분의 그 정정한 모습에 놀랐다.

그분과 헤어져서도 나는 얼른 돌아서지 못했다. 허리가 약간 굽은 그 모습이 예전의 어머니를 닮으셨다.

 

 

 

마사코 아주머니.

지금은 헐리고 없는, 우리 집 옆 우물 너머 살구나무집에 사셨다.

그때 집에 늙으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마사코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동무삼아 가끔 우리 집에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에 한두 번 뵈었는데 그 분은 연세가 높으신 데도 나를 여전히 잘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서울에서 교편을 잡는 일도, 딸아이가 미국에 건너가 환경을 공부한다는 소식도 어머니가 마사코 아주머니에게 말씀드린 듯 했다.

 

 

 

그 당시 연세가 많으셨던 어머니는 심심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아랫마을’은 불과 여섯 집이다. 그것도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고 멈추어선 집성촌이며 윗마을에서 오륙백미터 떨어진 외딴 마을이다.

이웃 강문이라는 어촌과의 사이엔 높은 철길이 있었고, 북쪽과 서쪽은 경포호수다. 그러니 고립 아닌 고립 마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고립무원의 우리 ‘아랫마을’에 마사코 아주머니가 이사를 왔다는 말을 어느 때엔가 들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분 고향이 아마 호남이지 싶다. 그분은 이리저리 흘러다니시다가 이웃 해안 마을 강문에 좀 사셨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다.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저씨를 잃었다는 건 분명히 안다. 마사코란 이름이 어떻게 해서 그분에게 붙어다니는지도 모른다. 대충 해안에 사시는 분들에겐 더러 그런 일본 이름을 가진 분이 있기는 했다.

본디 일본 분인지, 우리 이름이 있는데 그렇게 불리는지도 잘 모르겠다. 객지에 나가 사는 나로서는 마사코 아주머니라는 분이 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솔직히 그게 내가 아는 그분의 전부다.

 

 

 

언젠가 강릉 집에 내려갔을 때다.

그 마사코 아주머니가 우리 집 마루에 앉아 계셨다.

“아, 할머니 막네이가 오시네.”

그분은 한눈에 나를 먼저 알아보셨다.

그때 그분은 고향집을 지키는 장조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올해는 해수욕장 개장을 8일부터 한답디다.”

아마 나를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혹 해수욕을 하러 내려오려면 이 날 이후로 날을 잡으라는 뜻이 들어있는 듯 했다.

 

 

 

“그래요?”

장조카는 몰랐는지 하던 일을 놓고 마루에 나와 걸터 앉았다.

“내 이종이 요 뒤 거진에 사는데 거기는 15일에 한다고 합디다.”

그러시면서 올해는 동해안 수온이 높아져서 개장도 빨라졌다는 말씀도 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조카며느리가 커피 한잔을 타서 내왔다.

그분은 강문 누가 둘째 딸 시집을 보내며, 오죽헌 뒤쪽 저수지에 팔뚝만한 잉어가 잘 잡힌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렇게 앉아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곤 허균 생가에 기념관 개관식이 있다며 일어서셨다.

그분이 집마당을 나가자, 조카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케이비에스야. 모르는 게 없으셔.”

 

 

 

 

어디나 그런 분들이 마을마다 한 분씩 있다.

장조카 말대로라면 케이비에스고, 좀 깊이 들어가 보자면 일종의 컬쳐 커넥터이다. 저쪽 먼 지역의 소식을 이쪽에 알려주고, 이쪽을 그쪽과 연결시켜주는.

사람들 중에는 양치기 소년처럼 소식을 전달하는 능력의 소유자가 있다. 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퍼뜨리는 능력을 가진 분들도 있다. 대개 이런 분들은 발이 넓은 유목민적 기질이 있다. 양치기 소년이 유목을 하는 인물이듯.

 

 

 

그들은 넓은 지역에 걸친 소식원이 있다.

그래서 어디에 제비가 벌써 왔네, 모 대학 감자연구팀이 개발한 감자씨가 나왔네, 누가 꽃놀이를 가네, 공짜핸드폰이 나왔네, 천연 머리염색이라는 게 있네, 요샌 결혼식도 친척 20여명만 모여 한다네, 어디에 공짜 선물을 주는 무슨 행사가 있네. 인분을 주는 농사로 농업이 바뀌네...... 등등을 요령있게 잘 전한다.

뒷자리에서는 그를 다변가라며 못마땅해 하지만 속으론 그를 신뢰한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이 천천히 입증되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입증된다는 말은 그가 전하는 소식의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정주문화는 언제나 새로운 뉴스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이 느리다. 정보가 유통되는 큰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고향 ‘아랫마을’은 더욱 그렇다.

 

 

우리 아랫마을 할머니들 중에 비녀머리를 버리고 퍼머넌트 머리를 한 것도 이 마사코 아주머니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분의 끝없는 종용과 반복이 끝내 정주문화를 설득한 셈이다. 처음엔 그분을 ‘싱거운 소리’나 한다고 타박했지만 마사코 아주머니의 퍼머넌트 머리를 보고 한 분 두 분 그 헤어스타일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커넥터는 소식을 전하기만 하는 이가 아니다.

새로운 소식과 더불어 문화도 전파하고 접속도 시킨다.

서울에 왔다갔다고 다 커넥터가 되는 게 아니다. 커넥터는 도시와 도시 뒷골목의 변모한 문명과 문화를 잘 읽어낸다.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모습, 또는 이쪽과 저쪽의 차이점도 민감하게 알아챈다. 알아낸 정보를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에게 별 이득도 없는 문화를 ‘싱거울’만큼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전한다. 가랑비가 땅을 적시듯 커넥터의 싱거운 소리는 누구도 모르는 사이 그 지역의 정체된 문화를 변하게 한다.

 

 

 

 

마사코 아주머니가 강문으로 가는 순환도로를 넘으신다.

그분의 눈은 새로운 문화를 포착하는 카메라와 같고, 그 분의 귀는 항상 새로운 소식에 민감하다. 또한 그분의 내면엔 세상을 평등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

 

 

“마사코 아주머니 봤어요?”

집에 들어서자, 장조카가 날 보고 묻는다.

“요기 감자밭서.”

내 없는 사이에 우리 집에 들리셨다가 떠나신 모양이었다.

“주혁이 형 중매 서시는 모양이야.”

주혁이 형이면 장가 못 간 채 이럭저럭 홀로 늙은 육십대 노총각이다. 나도 잘 안다. 내 한 해 선배다. 그이를 만나면 홀로 사는 그의 삶을 다들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생각만 그렇지 그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중매를 선다는 건 엄두를 못 냈다. 엄두라기보다 어쩌면 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옳을지 모른다.

“참 고마운 분이네. 근데 여자는 어디 사람이래?”

“전라도 보성 사람인데 대관령 어딘가 식당에서 일한다네.”

“어떻게 거기 있는 분을?”

“예전 거기 목장에서 일하실 때 알고 지내던 분인가봐.”

그러니까 마사코 아주머니는 여기 사는 그 누구보다도 발이 넓고 바깥 출입이 잦다. 

“참. 대단한 분이네.”

“좀 좋은 직장이 아니라 그렇지 젊은 애들 취직도 시켜주고 그래.”

장조카는 그러고는 수목원에 나갈 채비를 했다.

 

 

생각할수록 탁월한 컬쳐 커넥터가 마사코 아주머니다.

멀리 이사를 가시고도 한 때 살던 데라고 노구를 이끌고 왔다 가시는 그분의 발자국에 커넥터 문화가 찍힌다. 암만 정보가 휙휙 빨리 퍼지는 사회라 해도 그런 분들은 여전히 마을마다 있다. 그분들은 마을과 마을을 왕래하면서 문화를 이동시키거나 접속시키는 '위대한 케이비에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