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둑 비작이 아저씨
권영상
눈이 내린다.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가끔 고향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전설 같은 이야기라 하지만 결단코 옛 이야기는 아니다. 불과 우리 나이 열예닐곱 시절의 이야기이다.
내 고향은 농사를 짓는 마을이었으니까 자연히 집집마다 소가 있었다. 농사를 실하게 하는 집은 두어 마리, 그렇지 않은 집이어도 중송아지 한 마리쯤은 다 있었다. 소는 크든 작든 빈촌의 재산이었다. 그게 목돈이 되었고, 또 요즘 농사로 말하자면 경운기요, 트랙터 대용이었다. 그러니 재산 중에도 중한 재산이 소였다. 근데 그 재산을 언제든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또 고통스러운 일이다. 남의 이 소중한 재산을 남몰래 집어가는 인물 중에 비작이 아저씨가 있었다. 비작이 아저씨는 다 아는 소도둑이다.
비작이 아저씨는 그 무렵, 서른 중반의 나이였다. 몸이 깡마르고 눈이 빛나고, 손이 잽쌌다. 내가 알기에도 그는 분명 수렵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마을 뒷꼍에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에는 잉어나 가물치, 모치 등의 굵직한 어류가 살았는데 그는 늘 거기에 나와 그들을 잡았다. 다른 이들은 대개 낚시나 줄낚시를 썼다. 그게 성이 안 차면 가끔 후리를 던지거나 두 사람이 끄는 반두, 또는 원뿔형의 버드나무 통발로 고기를 잡았다. 그러나 비작이 아저씨만은 달랐다. 그는 작살을 썼다. 길다란 통대나무 끝에 날카롭게 벼린 쇠를 박은 작살이었다.
작살질은 주로 거룻배를 이용했다.
사시사철 가리지 않았다. 어쩌다 호숫가에서 만나본 그는 늘 혼자였다. 혼자 거룻배에 서 있었다. 뭔가 낌새를 채면 조용히 배를 저어 암살자처럼 호수 안으로 숨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배 젓는 솜씨는 놀라웠다. 배를 밀고 앞으로 나가면 당연히 뱃머리에서 물길이 갈라지며 물주름이 퍼져 나간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무성영화처럼 소리나지 않게 삿대를 물속에 밀어넣고 빼고를 반복하며 배를 민다. 분명히 배는 앞으로 나가나 물주름이 일지 않았다.
호수 속엔 부들과 갈대숲이 무더기무더기 우거져 있다. 잉어나 가물치들은 주로 그런 습지 식물이 있는 곳을 터전으로 삼고 산다. 그걸 아는 비작이 아저씨는 부들이나 갈대숲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려면 부들숲을 헤치며 나가거나 배 밑에 깔며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갈대 한 포기 건들지 않고 갈대와 부들숲 사이를 고요히 드나들었다.
그러다가도 불현 물고기를 만나면 한 손에 작살을 들고 활처럼 허리를 구부린다. 그의 눈은 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만들어내는 물주름을 응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등지느러미에서 브이자 형으로 갈라지는 그 꼭지점을 꼬나본다. 그러다가 사정권 내에 들면 작살 든 팔을 머리 뒤로 한껏 뻗는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등지느러미가 만들며 가는 브이자의 꼭지점 10여센티미터 앞에다 정확하게 작살을 날린다.
그가 던진 작살은 실수가 없다. 잉어나 가물치에 가 꽂힌 작살이 요동치며 달아나면 그는 조용히 배를 저어가 무거운 작살을 들어올렸다. 오차가 허용되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는 일만큼 소를 훔치는데도 오차가 없다. 그가 소를 훔치기 위해 작업하는 시간도 눈 내리기 바로 직전의 시각이다. 소를 끌고 간 발자국을 눈 속에 감추기 위해서다. 그러려니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때만 해도 어두운 세월이었으니 눈만 내려 준다면 끌려나간 소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업의 최대 난제는 소를 훔쳐나왔는데 예상했던 눈이 내리지 않는다거나 또 내리던 눈이 중도에 멈추는 점이다. 그러기에 소 도둑질의 가장 큰 성패는 눈이 올 거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 도둑질이란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러나 비작이 아저씨가 누구인가. 암살자처럼 잉어의 뒤를 소리없이 쫓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살을 던지는 작살잡이의 명수다. 그의 작살엔 눈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 그가 하는 일에 실수가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다들 그가 소를 훔쳐갔으리라 심증적으론 믿어도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나중에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대개 호수 건너 마을에 트럭을 대기시켜 놓았다. 그리고 훔친 소를 호수의 얼음을 이용해 그쪽으로 끌고 갔다. 하룻밤에 두어 마리의 소를 주인 몰래 끌어냈다. 그의 재능은 가히 탁월했다. 혀를 내두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밤 사이 눈이 올지 안 올지는 비작이 아저씨만 아는 일이 아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라면 그쯤 일기는 안다. 밤 사이의 천기쯤은 눈치챈다. 그러므로 다들 그런 날 저녁이면 외양간 단속을 두 번 세 번 한다. 잠을 자다가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외양간을 살펴보곤 한다. 그런데 소도둑 비작이 아저씨가 누구인가. 소 주인이 외양간을 살피고 돌아들어갈 때를 치고 든다. 그 빈 틈을 타 비작이 아저씨는 하룻밤 새에 덩치 큰 소 두어 마리를 집어간다. 손에 쟁기 하나 대지 않고 노획하는 그의 수렵 실력은 차라리 가증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해서 잃은 소는 누구도 되찾지 못했다. 또한 그 어떤 경찰도 잡아내지 못했다. 이게 바로 그의 수완이 감쪽 같다는 입증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갈대 한 줄기 건들지 않고 거룻배를 모는거나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소를 집어가는 거나 모두 신의 경지에 이른 남다른 실력이다. 마치 흔적없이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달인의 솜씨다.
그러나 아무리 빈틈없는 비작이 아저씨여도 빈틈이 있을 때가 있다.
눈 내리던 어느 밤에 뒷마을 버들이 아저씨네가 소를 잃었다. 버들이 아저씨네는 독립가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무릎에 채이도록 내렸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에 외양간에 달려 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외양간이 텅 비어 있었다. 소를 찾으러 온 데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외양간에 들어섰는데, 거기 주민증 한 장이 떨어져 있더라는 거다. 주워 보니 거기에 박힌 얼굴이 소도둑 비작이었다. 세상에! 날고 기는 소도둑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맥없는 실수에 오히려 넋을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비작이 아저씨의 나쁜 행적을 다 알고 있었다. 코흘리개 아이들까지도. 그런데도 그만 혼자 다들 모를 거라며 살았다. 여름이면 호수에 나와 유유히 작살질을 했고, 겨울밤이면 남의 집 소를 내 소처럼 집어날랐다. 백구두에 검정 양복을 입고, 검정 선그라스를 끼고, 그만 으스대며 읍내를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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