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바보 남편

권영상 2012. 12. 10. 08:49

 

바보 남편

권영상

 

 

 

 

 

어슬렁어슬렁 뒷길로 걸어 집에 오던 참이다. 약국 앞에 방물장수 트럭이 서 있다. 오지그릇이며, 뚝배기, 키, 체, 나무밥주걱 등속을 잔뜩 싣고 왔다. 그 곁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오래전부터 이거 하나 사두어야지, 했던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나는 멈추었다. 내가 휙 멈추는 바람에 트럭 곁에 서서 신문을 들추던 50대 검정 점퍼차림의 남자가 신문을 놓고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뭐 떠오른 거라도 있으신가요?”

사내가 신문이 아니라 내 머릿속을 읽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른 그게 뭘 것 같소?”

내가 되물었다.

“고향의 것이지요.”

그가 이번엔 내 머리뚜껑을 확 열어젖혔다.

“맞소!”

나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사내를 껴안을 듯 그의 눈을 들여다 봤다.

“홍두깨를 주시오.”

그 고향의 것이 바로 홍두깨였다.

 

 

사내가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 서울바닥에서 그것도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남자가 홍두깨를 내놓으라니! 그것도 대낮에.

사내가 트럭에 매달린 나무막대기를 내밀었다. 홍두깨라 했다. 다듬잇돌방망이만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두 팔을 한껏 벌려 보였다.

“이만한. 한 일 점 오 미터는 될까?”

나는 예전, 어렸을 적 누님이 국수 안반 앞에 앉아 밀던 그 홍두깨를 떠올렸다. 그때 우리 집 식구는 모두 열두 명이었다. 그 식구들 점심을 위해 누님이 쓰시던 홍두깨는 가히 누님 키만 했다. 직경으로 치면 7,8센티의 굵기다. 그걸로 안반에 올린 국수반죽을 두 손으로 슥슥슥 밀던 일을 나는 기억해냈다.

“누님 키만은 했소.”

내 말에 사내가 그 복잡한 방물트럭 속을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있습니다. 저기 저 밑에.”

사내가 온갖 방물을 헤쳐낸 밑구멍에서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그 크기의 홍두깨를 꺼내었다.

 

 

 

나는 홍두깨값을 치르고 매우 흡족한 얼굴로 집을 향했다. 홍두깨란 놈이 워낙 큰지라 어깨에 메었다. 메다가 등에 걸치고는 양 팔로 감았다. 감아들고 오려니 지나가는 차에 걸릴 것 같아 이번에는 세워서 안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올 때다.

“사장님, 그게 뭐예요?”

내가 자주 가는 미장원 아줌마가 내다본다.

“홍두깨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집에 무슨 공사 중이신가요?”

내가 자주 가는 안경가게 곱상하게 생긴 사장님이 내다보며 묻는다.

“공사는 무슨 공사요.”

“아니, 그럼 그 물건이 뭔가요?”

“홍두깨요.”

또 오는데 만두를 사들고 나오던 우리 아파트 관리소 아저씨를 만났다.

“아이, 들고 오시는 그게 뭐지요?”

얼굴이 붉으레한 아저씨가 허리를 잘쑥 숙이며 물었다.

“홍두깨요.”

“아니 뭔 홍두깨가 기둥뿌리만 하대요?”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안고 있는 홍두깨를 물끄러며 바라봤다.

 

 

“아니 뭐라구요? 홍두깨요?”

가끔 내게 바가지를 씌우는 꽃집 아가씨가 쫓아나와 입을 딱 벌린다.

“그렇다오. 이따만한 홍두깨 첨 보지요?”

나는 내가 얼마나 가정적인가를 온 동네에 보여준다는 게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아니, 식구가 스무 명은 됩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만큼 가던 경비실 아저씨가 다시 묻는다. 아파트 마당에서 자주 뵙고, 자주 인사하고, 자주 농담하는 분이다. 주말농장에서 상추 따오면 아파트 마당에서 상추 몇 웅큼, 배추면 배추 몇 포기씩 드리는 아저씨다. 그 아저씨가 우리 집 식구를 모를 리 없다.

“아시다시피 셋이지요.”

“그러면 욕 좀 잡수시겠는데요.”

 

 

 

꽃집 아가씨가 안 됐다는 듯이 성큼 끼어든다.

“누구한테 무슨 욕을 잡수신대요?”

“가 보시면 알지요.”

꽃집 아가씨를 두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몰라도 아내를 너무 모르는 아가씨다. 아내는 음식 만들기를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이 대담함과 자상함에 감탄할 거다. 암, 감탄하다 말다. 오늘 저녁엔 이걸로 민 고향의 칼국수를 한 대접 감상해 볼 수 있을 거다. 이 보시게, 이 글 읽으시는 분! 오늘은 우리 집에 와 국수 한 그릇 자시고 가시면 어떨까.

 

 

나는 부푼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홍두깨를 어깨에 멘 채 들어섰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던 아내가 그게 뭐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뜬다.

“어, 홍두깨! 오늘 저녁에 국수해 먹자고. 고향의 칼국수.”

나는 으쓱, 어깨를 올려보였다.

“이걸로. 지금?”

아내가 물었다.

 

나는 아내 앞에 홍두깨를 탁 세웠다.

누님 키만한 홍두깨를 샀으니 홍두깨는 아내보다 더 컸다.

“사람의 자존심을 이렇게 짓뭉개다니!”

아내가 홍두깨를 채어들고 가버렸다. 뒷베란다에서 뭔가 내동댕이질치는 소리가 났다.

“아유 기특하신 우리 바보 남편!”

아내가 좀전의 얼굴과 전혀 다른 정중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아내 말에 의하면 식구 셋이 먹을 국수는 밀가루 두 공기로도 충분하단다. 밀가루 두 공기에 대고 어떻게 에이 삐 씨도 못 배운 저 무식한 홍두깨를 쓰겠느냐고 젊잖게 목소리를 깐다. 이 연약한 마누라가 저 무지막지한 홍두깨 무게에 깔려죽기를 바라는 거냐? 이것이 아내가 차근차근히 나를 설득한 이야기의 줄거리였다.

 

 

 

역시 여자의 눈은 다르다. 꽃집 아가씨의 ‘욕 좀 잡수시겠다’는 말이 내 앞에서 이렇게 실현되고 있었다. 정말 나는 바보 남편인가. 나는 그 점이 아직도 궁금하다.

전원주택을 사겠다고, 지난 겨울 나는 주말마다 서울 외곽을 돌아다녔다. 용인 어느 어름을 돌아다니던 중에 내 수준에 맞는 집을 봤다.

“저거다!”

나는 손뼉을 치며 그 길로 분양사무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댓바람에 계약서를 썼다.

쾅, 도장을 찍고 난 뒤 나는 사무실 여직원에게 물었다.

“여그가 어디지요?”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대답했다.

“여그가 안성이지라우.”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안성인 줄도 모르고 일을 저질렀다.

“나는 용인인 줄 알았는데.....”

“사장님, 농담도 잘 하시네요. 용인은 무슨 용인이에요. 도로 표지판 못 읽으세요?”

 

여직원이 농담을 할 태세였다.

낭패다.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 낯선 곳에다 나는 그만 떨꺽 말뚝을 박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말했더니 딸아이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아빠, 바보 아니지?”

“아빠가 바보 같냐?”

“경지에 이른.....”

“그럼, 내가 바보 맞니?”

나는 순간 긴장했다.

 

 

 

근데 그 바보같은 내가 아무도 엄두를 못내는 집을 그렇게 해서 덜컥 샀다. 소시민인 일개 월급쟁이가 바보가 아니고야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겁 많은 당신이 혼자 그 집에서 잘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나의 약점 중의 약점이다. 우리 집에서도 어쩌다 혼자 잘 때면 빈 집이 무서워 방마다 불을 다 켜놓고 잔다. 그것도 부족해 텔레비전까지 켜놓는다. 아내가 거실에 있을 때도 안방에 혼자 들어가 불 끄고 눈을 감으면 무섭다. 그래 가끔 눈을 떠서 뭐가 있나 살핀다. 아니면 창문쪽 후연한 빛을 보고 여기가 저승이 아님을 확인한 연후에야 간신히 잠든다.

 

정말 이런 내가 낯선 시골 안성집에서 혼자 살 수 있을까.

“라면밖에 못 끓여 먹는 사람이 혼자 밥해 먹고 살 수 있어?”

“암.”

“테레비도 없이 혼자 살 수 있어?”

“암.”

나는 암, 암 하지만 걱정이다.

‘장총을 하나 사서 현관문 뒤에 숨겨놓으면 되겠지.’

그때마다 나는 혼자 그런 궁리를 한다.

혼자 잠 자고, 혼자 밥해 먹을 줄도 모르면서 나는 그 집을 왜 샀는지 모르겠다.

 

“홍두깨 어쨌어?”

나는 아내가 뒷베란다에 내다버린 홍두깨를 되찾아 욕조로 간다.

방물장수가 하라는 대로 세제를 묻혀 씻고 또 씻는다.

“아닌 밤 홍두깨라고! 웬 사람 키만한 홍두깨를 안고 들어왔을까.”

가엾다는 듯 아내가 중얼거린다.

내가 봐도 좀 크다. 이걸로 칼국수 얻어 먹기는 이제 긁렀다. 그냥 내 등 뒤 방구석에 세워놓고 고향의 칼국수나 가끔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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