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누나 사는 동네

권영상 2012. 8. 16. 20:07

 

 

                                                                                                                            그림: 백향란

누나 사는 동네

 

권정생

 

우리 동네 양반 동네

누나 사는 동네 상놈 동네

개 코딱지 동네.

나랑 살지 않고 혼자 갔기 때매.

나 없이도 누난 좋아 갔기 때매.

코딱지 동네!

코딱지 동네!

“누우나아!”

“누우나아!”

메아리도 함께

불러 주는데

모른 체 혼자 사는

누나 사는 동네

개 코딱지 동네.

 

 

지금은 형제자매라 해봐야 한둘이 고작이지요. 나 혼자거나, 형제거나 아니면 오누이거나. 그러나 예전엔 적으면 4남매, 많으면 10남매까지 있었습니다. 자식이 여럿이다 보니 엄마손이 다 갈 수 없지요. 결국 맏이인 누나가 동생을 업어 키우고, 그 동생이 조금 더 커 그 동생을 업어 키웠습니다. 손위 누나가 엄마 노릇을 했지요. 업어주고 옷을 입혀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요. 셈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고, 더 커서는 돈을 벌어 상급학교 공부까지 시켰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차면 누나는 동생을 두고 시집을 갑니다. 시집도 내가 좋아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정해주셔서 정해주신 대로 남자를 따라 갑니다. 연지 곤지 찍고 가마타고 갑니다. 이웃마을로 가거나 아니면 아주 먼데로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누나가 시집을 가고나면 마치 엄마를 잃은 것처럼 서운합니다. 해 지는 저녁이면 누나가 간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주저앉아 땅바닥에 낙서를 합니다. “누나, 미워!”, “누나 동네 코딱지 동네”하고 말이지요. 누나를 미워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보고 싶어지는 게 누나이지요. 그러던 때가 불과 40년 전입니다.(소년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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