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밤
강소천
말없이 소리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는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구름빛이 검고 날이 조용하면 어김없이 눈이 오지요. 아닌게 아니라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오듯 벌써 저쪽 큰길에서 이쪽으로 눈이 오고 있습니다.
눈이 오면 제일 먼저 동네 개들이 달려나옵니다. 그 뒤를 따라 아이들이 쫓아나와 두 손으로 눈을 받느라 깔깔깔 웃고 떠듭니다. 첫눈을 받아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댔거든요. 그래서 눈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뛰다가 그마저 다 잊고 아이들은 어느새 눈싸움을 합니다. 야! 야! 하고. 눈싸움을 하다가 지치면 데굴데굴 눈뭉치를 굴립니다. 굴려서 굴려서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지요. 눈썹엔 솔순을 붙이고, 두 눈엔 숯검정을 붙이고, 코와 입엔 부지깽이 동강을 갖다 박고.
노는 것도 힘이 들어 저녁을 먹고 누우면 아이들은 담박에 달달달 코를 골며 자지요.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뜨면 엄마도 누나도 다 잠든 밤. 이 깊은 밤에 깨어있는 사람은 나 혼자. 자려해도 자려해도 잠이 안 오면 나는 나와 이야기하지요. 돈 없는 누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엄마는 언제쯤 아기를 낳을 건지,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건지. 누군가 깨워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깊은 밤. 나는 자꾸 그 대답을 내게 묻습니다.(소년 2012년 11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