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백향란
저녁
이원수
저녁밥상에 아기가 운다.
밀가루 수제비에 트집이 났다.
어머니는 달래다 화를 내시고
아기는 밥내라고 더 소리친다.
달님이 들창으로 들여다 보고
창밖엔 코스모스가 듣고 있었다.
집 뒤 솔숲 끝에 웅뎅집이 있었지요.
소나무숲 언덕 밑 푹 꺼진 땅에 있는 집이라 해 웅뎅집이라 불렀지요. 거기에 내 친구 돈만이가 살았습니다. 부엌 한 칸 방 한 칸 작은 초가집에 식구가 여섯. 돈만이 밑으로 여자 동생만 한 살 터울로 쪼로록 셋이었지요. 양식이 넉넉지 못한 돈만이네는 이른 봄을 기다려 이웃동네 군부대에 가 마른 누룽지를 얻어다 불려서 간신히 끼니를 때웠습니다.
“우리도 누룽지 받아 오면 안 돼요?”
마른 누룽지가 맛있는 나는 가끔 그게 부러워 아버지를 졸랐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다시는 그 말 못 나오게 나를 타일렀습니다.
“우리마저 얻어먹으면 웅뎅집 식구들 다 굶어 죽는다.”
우리도 배고팠지만 아버지는 더 배고픈 돈만이네를 생각했지요.
이 시는 1946년, 해방 뒤 우리나라의 배고픈 현실을 말하고 있네요. 아침에도 밀가루 수제비, 점심에도 밀가루 수제비, 저녁에도 밀가루 수제비. 그게 싫어 밥을 달라고 떼 쓰며 우는 아이와 아이를 달래는 가난한 어머니가 참 가엾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시절 우리나라는 모두다 이렇게 배가 고팠습니다. 집집마다 죽이나 국수로 간신히 연명하며 살았댔지요.(글 권영상)<소년 2012.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