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장수에게 고물을
권영상
늦은 아침을 끝내고 났을 때다.
“고물 삽니다. 고물.”
요 앞길로 지나가는 고물장수 트럭의 스피커 소리가 났다.
여섯 집이 모여 사는 을씨년스런 시골 아침이 그나마 파랗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아니, 그렇게 한가할 때가 아니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 ‘여기요!’ 하고 트럭을 불러 세웠다.
금방 내 목소리를 듣고 트럭이 멈추었다.
“접시 안테나도 받나요?”
대답 대신 트럭이 우리 집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이, 나는 이층 발코니에 뽑아 놓은 접시 안테나를 들고 내려왔다. 일부 부식의 기미가 있는 곳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새것처럼 탄탄했다.
고물장수 아저씨가 쇠막대기로 접시 안테나를 툭툭 치더니 ‘그냥 주세요’ 한다.
그 말에 나는 반색하며 받아주시는 것만도 고맙다며 성큼 넘겼다,
나는 그렇게 앓던 이처럼 2년 동안이나 껴안고 있던 접시 안테나를 처분했다. 그것 없이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데 통신사는 안테나 수거에 미온적이었다.
고물장수 트럭이 시동을 걸자, 다시 조용하던 스피커가 살아났다.
“고물 삽니다. 고장 난 티브이, 냉장고, 가스레인지 삽니다. 고물 삽니다. 고장 난 농기구, 고장 난 괘종시계, 컴퓨터 삽니다.”
트럭이 요 앞 삼거리를 지나, 마을을 돌아 나가는지 스피커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몇 년째 괴롭히던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다.
접시 안테나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다면 벌써 치웠을 테지만 통신사 재물인 듯 해 아무 소용에 닿지 않는데도 뽑아놓고 처분하지 못했다. 발코니에 둔 거니까 눈이 내리면 눈 칠 때 거치적거리고, 페인트칠 할 때 이리 저리 옮기는 게 성가셨다. 그렇다고 아래로 끌어 내린단들 따로 보관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둘 공간이 없었다.
접시 안테나처럼 내 곁에 오래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것이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도 실은 내게 적잖이 있다. 오래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같은 습관들이 그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이건 버리고 새해를 맞아야지, 한 것 중에 하나가 흡연이다. 오래도록 내가 길들인 나의 것이면서도 40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했다. 그 습관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앓는 이처럼 안고 살았다. 그런데 다행히 어느 계기가 있어 고물 트럭에 넘긴 접시 안테나처럼 7년 전에 처분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결단은 산뜻하다. 나를 뒤돌아 볼 때마다 두고두고 자화자찬 하는 유일한 결단이 그것이다.
흡연 말고 또 있다. 나의 성급한 성미다.
이게 언제 적부터 내게 기생해 사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받아 나온 건지 아닌지. 이것의 가장 큰 단점은 서두르는 일에 생각이 꽂히면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는 점이다. 행동도 직선적이 되고, 말 역시 직선적이 된다. 두루두루 살피지 못하니 후회할 일이 생긴다.
밥을 먹어도 일부러 천천히 먹어보고,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답답해 할 정도로 천천히 해 보지만 급한 성미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냥 살 생각은 없다. '바쁜 날이라서/ 천천히 걷는다'는 야마오 산세이의 시를 배워야겠다.
<교차로신문> 2024년 1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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