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폭풍우 치는 밤의 오두막집

권영상 2023. 12. 28. 14:35

 

 

폭풍우 치는 밤의 오두막집

권영상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밤입니다.

비를 피해 염소 한 마리가 간신히 오두막집에 찾아들었습니다. 아, 안심이다! 하는 그 순간, 발목을 삔 늑대 한 마리가 이 깜깜한 오두막집에 찾아들었습니다.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깜깜한 오두막집에서 둘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당신이 와서 마음이 한결 놓이네요.”

염소가 어둠 속 그를 향해 말했습니다.

 

 

“천둥 치는 밤에 이런 오두막에 혼자 있었다면 나라도 좀 불안했을 거예요.”

늑대는 어둠 속 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어디 사세요?”

염소가 묻는 말에 늑대는 바람골짜기에 산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염소는 잠시 놀랍니다. 거기는 늑대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골짜기가 위험하지 않느냐고 염소가 물었습니다.

조금 험한 곳이긴 하지만 살기에는 괜찮다고 늑대가 대답했지요.

 

 

“당신은 어디 사세요?”

이번에는 늑대가 염소에게 물었습니다. 염소는 초록풀언덕에 산다고 말했지요. 그 대답에 늑대는 군침을 흘립니다. 거기는 염소들이 사는 곳이고 염소는 늑대들의 좋은 밥이니까요.

“저는 거기에 자주 간답니다.”

늑대가 입을 쩝쩝거리며 말하자, 맛있는 풀을 생각하며 염소가 소리칩니다. ‘저도 자주 간답니다.’ 하고.

서로 마음이 맞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초록풀언덕을 떠올리자, 갑자기 배가 고파왔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그때 번개가 치고 요란한 천둥이 꾸르릉 울렸습니다.

둘은 이 무서운 천둥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껴안습니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그치고 밤하늘엔 별이 뜨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우리 식사라도 같이 해요!”
염소는 곧 헤어지게 될 작별이 아쉬웠습니다.

 

 

늑대와 염소는 내일 해가 뜨면 이 오두막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얼굴을 모르니까 ‘폭풍우 치는 밤에’ 그 말을 서로 꺼내며 만나기로 하고, 둘은 캄캄한 오두막집을 나와 제가 갈 길을 걸어갑니다.

키무라 유이치의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이야기 동화입니다.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했지요. 해가 뜨면 이들은 서로 만나게 될까, 하고요. 이들이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빛입니다. 빛은 사물을 분별하게 합니다. 염소가 늑대에게 잡아먹힌다거나 늑대가 염소를 잡아먹는 이 일은 오랜 분별력 때문에 생긴 거지요. 빛은 생명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도 하지요.

 

 

염소와 늑대가 오두막집에서 서로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천둥소리에 서로를 껴안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까닭은 거기에 세상을 분별하는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는 건 아닌가요. 혹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폭풍우 치는 오두막집의 하룻밤, 우리의 세상이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교차로신문> 2024년 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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